1.
7월 이맘때쯤이면 장마 시즌이 시작되는데, 평소에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비가 지긋지긋해지는 계절이다.
나는 하늘에서 미스트처럼 흩뿌려지는 그런 이슬비를 사랑한다. 이런 비가 오는 날에는 굳이 우산을 쓰지 않고 온몸으로 맞곤 하는데, 딱히 옷이 젖거나 하지도 않고 촉촉함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기분이 좋다. 또, 창창한 여름날의 햇빛을 가리는 먹구름이 만들어내는 명도 낮은 주변의 풍경도 퍽 마음에 든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화창한 날씨보다 어두침침하고 우울함을 자아내는 그런 흐린 날씨를 더 선호하는 것이 내 타고난 성정(性情)인 것이다.
위병소 근무를 할 때 비가 오면 우의를 입고 지붕이 있는 초소에 들어가 비를 피하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일부러 밖에서 서있으며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우의를 때리며 연주하는 비트를-박치인 내가 보증하는데, 60bpm 정도 될 것으로 짐작한다.-온몸으로 듣고 느끼며 비를 맞는 것을 즐기곤 했다. 이런 내 은밀한(?) 취미가 변태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비가 올 때 맡아지는 싱싱한 흙 내음, 작은 빗방울이 느껴질 듯 말 듯 내 피부에 접촉하는 그런 느낌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좋다.
또 흡연자들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건데, 잔잔하게 몽우(濛雨)가 오는 날에 담배를 태우면 연초가 은은하게 타는 소리가 은근히 잘 들리는 듯한 느낌-혹은 내 착각일 수도-이 든다. 별 건 아니지만 이런 별 것이 아닌 것에서 오는 쾌감을 주는 비를 좋아한다.
2.
하지만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좋아할 만큼의 변태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초여름에 찾아오는 호우(濛雨)는 모두의 불쾌감을 자아내는 모든 특성을 다 갖고 있다. 우산을 써도 막을 수 없는 강우량에 다 젖어버리는 바지 밑단, 적정 이상의 습도로 인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 이런 식으로 비가 오는 날에는 원래도 집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는 내 성격에 불을 지펴 정말로 밖에 나가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래서 침대 매트리스가 마치 내 신체의 한 부분에 융합된 것 마냥 가만히 누워 있곤 한다. 그러면 거친 비가 주는 불쾌함을 조금이나마 덜 느낄 수 있다.
3.
하지만 군대에 있는 지금 처지로선 가만히 생활관에 누워 이 장마가 그저 지나가기를 바라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비가 심하게 오면 야외 활동을 시키지는 않을 정도의 개념은 있는 집단이지만, 근무가 있는 날에는 궂은 비가 오는 날에도 예외 없이 투입된다. K2 소총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하기에 우산도 따로 들고 다닐 수도 없다. 그래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공병 우의인데 이것이 은근히 무게도 나갈 뿐더러-원래도 무거운데 빗물을 머금기 시작하면 두 배로 더 무거워진다-, 절대로 비를 완벽하게 막아주지 못해 서서히 젖어가는 군복 때문에 기분도 서서히 뭣같아진다. 또 위병소 근무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면, 부대에 들어오는 차량과 인원들을 통제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종이로 된 출입대장을 비 맞아가며 운전자와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본래의 반질반질한 질감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지고, 불쌍한 내 손에 접촉하면 불쾌한 촉촉-눅눅한 느낌의 반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펜이 종이에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잉크가 빗물과 함께 몽땅 번져버려 원래 적혀 있었던 기록까지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출입대장지를 행정반으로 부터 다시 받아 내려와야 하는데 이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왔다갔다하며 새 종이가 또 다시 젖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듯 날씨가 화창해도 기분 나쁜 일로 가득한 군대에서 장마 시즌이 찾아오며 장대비가 쏟아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앞으로 다가올 장마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