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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와서 응축된 축축한 공기가-부유하는 물 분자(分子)가 온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유난히 무겁게 느껴진 날이었다. 하필 각개전투를 가는 날에 비가 오다니. 운도 더럽게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비는 아침 식사를 마칠 때쯤 그쳤다. 적어도 쿱쿱한 냄새가 나는, 기분 나쁜 판초 우의를 온몸에 두르고 50분간 행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기뻤다.
약 20일간의 훈련소 생활 중 처음으로 은면 전투화도 신었다. 비가 그쳤긴 했지만 밤새 내린 비로 물웅덩이가 많이 생겨, 육면 전투화에 비해 방수가 그나마 더 잘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기분 속에 완전군장을 메고 각개전투 숙영 훈련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흐드러진 옅은 안개에 싸인 훈련소의 모습이 익숙한 평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흐린 하늘 때문에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헷갈리는 오묘한 날씨였다.
완전 군장을 메고 이동해 보는 것은 오늘이 두 번째다. 첫 번째엔 약 20분을 걸었는데, 허리와 어깨가 정말 쑤셨다. 그런데 이번엔 그 두 배 이상인 50분을 걸어가야 한다. 정말 죽을 뻔했다.
달콤한 딸기 냄새가 풍겨오는 비닐하우스, 텅 비어 쓸쓸해 보이는 논가, 유난히 폭이 좁아 옆으로 빠지진 않을까 걱정했던 돌다리, 젖은 풀 냄새가 기분 좋았던 산길을 거쳐 목적지인 숙영장에 도착했다.
텐트를 치는 나무 데크에 군장을 바로 던져놓고 앉아서 땀을 식히며 물을 마시는데,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물은 없었던 것 같다. 중노동을 하며 가뭄이 온 것처럼 말라버린 목을 축이는 물, 나에겐 성수고 오아시스였다.
5분 정도 쉬었을까, 바로 데크 위에 텐트를 치라는 조교들의 외침이 들렸다. 이미 녹초가 돼서 더 이상은 못 움직일 것 같았는데, 명령을 받자마자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졌다.
텐트를 다 치고 여러 가지 교육을 했다. 교육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을 배웠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은 진흙 바닥에서 생으로 굴렀으니까•••.
깨끗했던 전투복과 은면 전투화가 진흙과 풀로 뒤덮여 더러워졌다. 훈련 받는 내내 찝찝해서 내 기분마저도 더러워졌다.
그렇게 열심히 구르고, 점심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하필 우리 분대가 배식여서 영외 배식을 준비했다. 비닐 장갑, 비닐 팔 토시, 비닐 앞치마를 착용하고 식당으로 사용하는 강당 앞에서 중대의 모든 병사들에게 국을 퍼줬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여서 시간이 지날 수록 국자를 잡은 내 오른손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손이 괴사로 떨어져 나가기 전에 배식을 모두 마쳤다.
임무가 끝나고 강당 안에서 밥을 먹는데, 하필 숙영장 바로 앞에 소 축사가 있어 소똥 냄새가 진하진 않지만 불쾌할 정도로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똥 냄새를 맡으며 식사를 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문명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은 이런 경험이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백미밥을 씹고 있는지 소똥을 씹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면서 손에 꼽는 더러운 경험이었다.
오후 훈련도 오전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진흙탕에서 구르기. 이것만 몇 시간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근데 확실히 몸이 힘드니까 시간이 빨리 가긴 했다는 점이 좋다면 좋은점이었다.
열심히 구르다 보니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소똥 냄새를 맡으며 밥을 먹었다. 메뉴는 돈가스였는데, 힘들게 훈련받고 먹어서 그런가 되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샤워를 해야 하는데, 샤워 건물 앞에서 대기한 후 주어진 샤워 시간은 단 5분. 정말 정신없이 막 씻었다. 인생에서 이렇게 빨리 대충 씻고 나왔던 적이 있었던가•••. 5분이 5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텐트에 들어가서 취침 준비를 했다. 정말 너무도 추웠다. 두꺼운 침낭에 핫팩도 세 개나 뜯어서 최대한 따뜻하게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같이 자는 동기가 감기에 심하게 걸린 상태였는데, 밤새 기침을 할 때마다 좁은 텐트 전체가 흔들려서 계속 잠에서 깼던 것 같다. 추운 날씨였던 탓인지.. 감기에 옮은 것인지 아침에 기상했을 때 목이 아팠다.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이날도 딱히 어제랑 다를 것 없이 열심히 땅바닥에서 굴렀다. 또 밤새 비가 와서 슬슬 말랐던 바닥이 다시 진흙탕이 돼서 정말 찝찝했다. 축축하고 끈적한 진흙이 맨 피부에 달라 붙는 느낌. 정말 불쾌한 감각이다.
그렇게 오전까지의 훈련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침낭과 모포와 포단을 군장에 집어넣고, 설치했던 텐트를 부수고 완전군장을 다시 등 뒤에 메는데 이틀 간 힘을 많이 써서 그런지 어제보다 더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컨디션도 좋지 않았던 탓인가 걷는 데 계속 비틀비틀거렸다. 컨디션이 안 좋을만 했던게.. 추운데 야외에서 자고 온갖 뺑이를 다 쳤으니•••.
부대 도착 약 20분 전 오르막길에서는 진짜 거의 넘어질 뻔해서 뒤에 있는 동기가 잡아주기도 했다. 그냥 쓰러져서 편하게 열외할까 생각을 백 번은 한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별탈없이(?) 막사에 도착했다. 군장을 내려놓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무거운 군장에 눌려 혹사한 어깨가 정말 아팠다.
취침 시간에 파스를 붙이고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이게 각개전투의 끝이 아니라는 것에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