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에 계산기를 내려놓았다.
대신 거리로 나갔다.
평생 책상 앞에서 숫자의 합계를 맞추며 살아온 나였지만, 어느 순간 세상이 매긴 나의 시가가 바닥을 쳤다는 서늘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심했다. 이력서에는 차마 적지 못할, 세상의 눈으론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보자고. 계산된 행선지가 아닌 발길이 닿는 곳으로 그냥 흘러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무미건조한 숫자가 아닌... 그냥 날 것 그대로 였다.
어느 오후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귓가에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꽤 많이 주웠어!"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정리하던 어르신이 환하게 웃으며 동료에게 말을 건넸다.
"운이 좋았어. 오늘은 라면 한 봉지 더 끓여 먹을 수 있겠네. 허허."
순간 나는 멈칫했다. 누구라도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없지만 단순 시장 가치로 따지자면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 듯 보였으나 대화에서는 나는 그 동안 그 어떤 우량주에서도 보지 못한 안정되고 따듯한 자본 구조가 느껴졌다. 어르신의 장부에는 타인과 비교하느라 낭비되는 매몰비용이 없었다. 한 컵의 물에서도 감사를 찾아내는 고도의 만족이 있었다. 세상이 매긴 시장 가치는 0에 수렴할지 모르나 내면의 자본금은 놀라울 만큼 견고하고 단단했다.
*화려함에 가려진 재무제표의 이면
반대로 번듯한 직함과 고액 연봉을 가진 이들의 장부를 수없이 보아왔다. 겉으로 본 그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장부의 내면은 전혀 달랐다. 그곳엔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시선이라는 고이율 부채가 가득했다. 자산 규모는 팽창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자산 가치가 깎여나가는 손상차손이 발생하고 있었다.
세상은 그들을 성공이라 기록했을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는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로 보였다.
*인간의 액면가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회계적으로 모든 주식은 발행 시점에 고유한 액면가를 가진다. 시장은 탐욕과 공포에 따라 가격을 요동치지만 주식의 액면가는 변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동일한 액면가로 발행된 존재라는 사실을... 각각의 인생 장부에서도 나는 눈물이라는 계정 과목을 발견했다. 단순 쉽게 부르는 계급과 격차는 자본이 설계한 프레임일 뿐...
존재의 무게는 결코 차등 발행되지 않았다. 세상이 누군가를 무능력이나 가난이라는 계정으로 분류했을지라도 그 사람의 본질적 가치는 단 1원도 감액되지 않는다.
*당신의 내면 장부의 현재상태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장부가 있다. 세상이 당신을 쓸모없는 비용으로 처리했을지라도 당신의 내면 장부에는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행복이라는 이익잉여금이 쌓일 수 있다.
나는 이제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기술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대신 사람들의 장부 속에 가려진 진실을 기록하는 관찰자가 되려 한다.
오늘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장부에는 세상이 강요한 부채가 기록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만이 아는 숨겨진 자본이 적립되고 있는가?
시가는 속일 수 있어도, 당신 존재의 액면가는 결코 속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