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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Dec 17. 2020

'부캐'를 찾고 있나요?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바야흐로 투잡, 쓰리잡 시대다.

삼사십 대의 부모님 세대는 한 회사를 오랫동안 다니고 착실히 저축하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자랐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 날이 밝아오기 전 집 앞에서는 스쿨버스를 만나고 밤 11시가 되면 자녀를 데리러 온 차들을 만났다.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모두가 그랬다. 당연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고 성실이 습관이었다. 스마트폰은 대학을 졸업할 때가 돼서야 생겼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유튜브가 생겼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꽃다운 나이라 믿었던 스물에 도서관에서 살기 싫었다. 대학에 갔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러 다녔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여전히 성실했고 열심히 했다. 남들 취업 준비하는 시기에는 밤을 새우며 졸업 작품에 매달렸고 취업을 해야 할 땐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넌 정말 언젠가는 잘 될 거야."

(글을 쓰다 보니 억울한 것 같다. 억울한 게 아니라 억울한 '것 같다'가 정확하다.)


방송가에서 유행이던 '부캐' 설정이 일반인의 삶을 보여줄 때도 쓰일 줄을 몰랐다. 이제 정말 부캐의 시대다. 부캐를 찾아야 할까. 이 사회는 사람을 너무 불안하게 만든다. 부캐도 그런 요소 중 하나다. 남들 다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정체된 느낌이다. 회사만 다니면, 혹은 육아만 한다면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들 수 있다. 부캐는 유튜브가 될 수도 있고 네이버 스토어팜 운영이 될 수도 있고 브런치에서 성공해 책을 쓸 수 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다양하다. 재능이 있거나 추진력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제대로 만난 세상이다. 하지만 머리로 마음으로 알아도 행동이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블로그 활성화시키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런 시장을 파고들어 남들 다 아는 정보로 강의를 제공해 돈 버는 사람들도 있다. 별 세상이다.


출산을 하기 전에는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또래 친구들보다는 더 일찍 직장도 바꿔보고 연봉도 천 단위로 올렸고 사업도 해보고 현금도 만져보고 말아먹어도 보고 애도 낳았다. 그때 부캐라는 말이 있었다면 나도 부캐를 가진 트렌디한 젊은이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땐 그랬다. 인생이 길어졌다고 회사원의 수명은 짧다고 노후를 위해 제2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나는 그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내 삶의 충실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출산과 육아로 내 삶이 멈추었다. 나는 멈춘 삶을 견딜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사실 출산 후 3개월 안에 회사원으로 컴백하려고 했다. 마음이 그렇지 못한다.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나갈 수 없다. 말하면 말하는 대로 두고 나갈 수 없다. 육아를 하는 누구나 흔한 구절인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무기력한 존재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다.


보통 제2의 직업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 진리를 간과하진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만 보고 선택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해보고 싶었던 일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선택했다. 1년 동안 번역을 파고 파고 파면서 말도 안 되는 착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홍보를 하는 사람이다. 홍보를 좋아하고 잘...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삼십 대 중반까지 달렸는데. 자그마치 1년 동안 잠을 줄이고 새벽에 노트북 앞에 앉아 아기가 울면 쪽쪽이를 끼워주고 (엄마가 새벽에 달랠 수 없어서 27개월이 된 아기는 아직도 쪽쪽이를 못 뗐다) 다시 재우고 낮에는 녹초가 된 얼굴로 미술놀이를 해주고 가끔은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부족한 낮잠을 한 시간씩 잤다. (27개월 아이가 "엄마 너무 많이 봤잖아. 그만 보여줘"라고 말한 적도 있다. 미안해) 기술 번역을 시작한 게 아니라 출판 번역과 영상 번역을 더 잘하고 오래 하고 싶어서 공부했기에 영혼을 털털 갈아가며 또다시 최선을 다했다. 1년이 지나니 허무해졌다. 전업맘도 아니고 워킹맘도 아닌 포지션을 왔다 갔다 하면서 육아 죄책감도 커져만 갔다. 또 다른 사람들은 회사원이 본캐고 번역이 부캐인데, 나는 육아가 본캐고 번역이 부캐인가, 직업상 육아는 본업이 아닌데... 하며 남들과 비교하며 쭈그러들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로 번역을 선택한 사람은 어땠을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남들 보기에 완벽한 직장,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캐로 선택하고 선생님들은 그런 사람들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실제로 그 에이전시에서 출판된 번역서에 역자 소개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유명대학 출신 분들이 많아 보인다. 괜한 자격지심이 생긴다. 지금까지 본 대다수는 순수하게 좋아하고, 인생에서 뛰어나게 잘하는 일이어서 선택한 경우가 많다. 아마 그 부분이 딱 맞아 데뷔도 빠르고 남들보다는 수월했을 듯싶다. 이렇게 딱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본캐만큼 완벽한 부캐를 가지려면 본캐를 얻었을 때 노력의 배를 해야 한다. 나의 경우, 비록 경력 단절이 있다 하더라도 10여 년간 쌓은 본업, 즉 본캐를 다시 시도한다면 지금 하는 부캐보다는 훨씬 수입이 좋고 훨씬 잘하고 훨씬 자신감도 충만할 것이다. 이론상 겨우 1년 했다고 어찌 부캐가 본캐마냥 날개 달아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얼토당토않다. 머리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좌절이 크고 자존감이 한없이 내려앉는다. 우리가 남들의 부캐를 쉽게 보지만 실제로는 부캐가 부각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수없는 시간을 들였을 테다. 물론 좋아하고 거기다 잘하는 일이라면 쉽게 됐을지도 모른다. 분명 동일한 시점에 시작했는데 결과가 달라 억울하지만 아마 뿌리를 들쳐보면 분명 그 사람의 출발선은 그때가 아니었거나 천재일지도 모른다. (천재는 내 일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므로 더 이상 달려들고 싶지 않다)


난 평생을 노력하며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허무하고 공허한 마음이 더 컸다. 또 이십 대 때도 도전했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바닥을 쳐도 오뚝이처럼 툴툴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부캐를 얻으려는 지금, 스무 살의 나보다 열여섯 살의 나보다 더 힘들 것이다. 누구나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윤활유 없이 기계를 돌리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본캐만큼 완벽한 부캐를 얻으려면 그만큼 각오와 격려해주는 가족이 필요하다. (남편은 뼈 때리는 말만 하지만)


잘하든 못하든 어쩔 수 없이 하든 정답은 계속하는 것이다. 계속하면 언젠가 된다. 하지만 굳이 부캐가 아니더라도 계속 그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삼십 대 후반, 사십 대를 맞이하려면 부캐가 아닌 본캐를 발전시켜야 한다. 다시 돌아간다면 본캐를 발전시킬 수 있는 노력에 집중할 것이다. 본캐 없이 전혀 다른 분야의 부캐를 만들어야 하는 노력에 사력을 다한다면 친구와 다른 삼십 대 후반, 사십 대를 맞이할 것이다. 보이는 것보다 tough하다. 본캐밖에 없다면 부캐를 말하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는 육십 대 중반이시지만 아직도 본캐로 회사를 다니신다. 물론 상위 1%가 되려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우리 집은 IMF가 터진 사십 대 시절 가장 풍족했고 그렇게 자란 나는 이놈의 부캐를 발전시키느라 가난한 삼십 대 후반을 지내고 있다. (쉽게 말해 친구들은 부동산에 투자할 돈으로 우리 가족은 공부하는 데 펑펑 쓰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캐를 개발해야 하는 인생이라면 그리고 천재가 아니라면 학창 시절 그랬든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인생이다.


우리가 스무 살을 청춘이라 부르고 그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엄마는 지금의 나를 청춘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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