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늘한 손마디가 어느새 굵어졌다. 상처하나 없던 손 등은 군데 군데 습진으로 갈라졌고 계속 물이 닿아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 손끝은 지문에 불이 난 것처럼 건조하고 따갑다. 나이 먹도록 엄마의 손마디는 원래 굵은 줄 알았고 엄마의 손은 원래 거친 줄 알았다. 엄마가 된 나의 손은 우리 엄마를 닮아가는 구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이 너무 침침하다.
글씨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너무 답답하다.
엄마 오늘 고생했다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우리 딸의 하얀 얼굴만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엄마가 되었는데도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가 도와줘야 병원 한 번 갈 수 있고, 짜투리 일도 할 수 있고 오랜만에 콧바람도 잠깐 쐬고 올 수 있다. 엄마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기대고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잠깐이라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뿐이다. 새벽 내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부스럭거리는 아기를 살피고 아침부터 밤이 되도록 정신없는 독박육아를 치르는 딸을 위해, 주말 출근도 해야하는 남편을 대신에 종종 아기를 봐주시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부모님의 도움없이 정말 혼자 모든 걸 감수하는 엄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엄마는 이런 예순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그린 미래는 어떤 그림이었을까.
엄마에게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2003년 11시까지 야자를 하던 어느 날, 우리 학교 앞에서 폭죽놀이 행사가 있었던 것같다. 저마다 이어폰을 끼고 공부하고 있던 친구들 몇몇은 까만 하늘에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을 바라봤다. 나 또한 대학 입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 속에 스무살의 모습만을 상상했었다. 그때 내게 서른, 마흔, 쉰은 없었다.
그런 내게 마흔이 오고 있다. 쉰이 오고 있다. 빠르게 오고 있다.
내가 마흔이 되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아빠는 일흔이 되고 아가는 다섯살.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미래였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내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 현재의 시선과 미래에 대한 기대 .. 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영어, 수학 또는 인턴생활 같은 선행학습이 전혀 안되서 매 시간이 당황스럽고 어리숙하다. 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우리 엄마처럼 내 딸에게도 사랑과 지혜를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가에게는 참 좋은 냄새가 난다.
따뜻하고 포근한.
우리 아가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은 날,
엄마와 아빠가 아가의 따뜻한 세상이 되어 주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 아가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온기를 주는 세상이 되었다.
내 모든 것을 바꾼 존재.
지난 과거 남녀간의 사랑에 흘린 눈물은 별거아니었구나.
그런 건 그저 사소한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이었을 뿐.
우리의 삶이 너로 인해 변해간다.
과거에 멈춰있을 시간이 없다.
너와 함께하는 오늘이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