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독여줘야 할 때. 외롭지만 지금 잘 하고 있어.
우리 모두 사회에 나가면 누구나 여러개의 그룹을 가진다. 먼저 다가가는 쪽이었기에 20대 중후반까지는 꽤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던 것같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동아리 친구들, PR 전문가 모임, 영어 회화 스터디, 리더십 친구들, 직장 선후배들, 인턴 동기 등등등...
당시 사람에게 상처받길 거부하면서 먼저 주도하지 않게 되니 그저 적당한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사회인에서 초보 엄마로 무대를 옮긴 지금은 다른 무대에 있는 친구들과 본의아니게 멀어지고 있다. 이제 한 번 더 괜찮다, 내 탓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며 마음을 다독여야 할 때가 온 것같다.
임신 중 입덧이 심해서 5개월동안 집 밖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을 때, 친구들 단톡방에서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몰랐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보았다. 전에 일체 그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에 씁쓸했지만 내 상황에 대한 배려려니 했다. 지금도 친구들은 종종 또 점심때 보자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늘 그랬기에 몸이 먼 곳에 매여있어 그러려니 하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아기를 엄마에게 부탁드리고 나간 친구들 자리에선 달라진 시선과 내겐 조금 가혹한 말에 금새 위축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육아 외 어떤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아쉽다하면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친구들은 의지의 문제라며 조언해주는 것. 무대가 달라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내 과거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다들 나이가 들면 친구들이 바뀐다고 하던데 지금이 그런 시기인가보다. 아이가 생기면 내 젊은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 아닌 아이의 엄마들이 평생 친구가 된다고들 한다. 지금은 내게 그것조차 어려워보인다. 조리원 퇴소할 때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분들과 가끔 카톡으로 근황을 나누긴 하지만 일부러 만나기까지는 아직 어렵다. 일주일에 2번씩 문센을 다니긴 하지만 억지로 모임을 만드는 것도 자연스럽지는 않다. 지금은 시간맞춰 문센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기특할 뿐이다.
남들은 조리원 친구 모임도 있고 문센 끝나고 커피도 마신다던데. 내가 이상한가하며 또 다시 내 자신의 문제로 돌아와 버린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조리원 친구들 모임이 활발한 지역은 따로 있다. 금방 아파트가 들어선 신도시가 대부분 그렇다.
친구에게 조금 씁쓸한 오늘 하루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래서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엄마들의 1, 2년은 외롭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그제서야 내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해소됐다.
이런 상황에 따른 감정은 내게 여러가지를 변화를 가져왔다. 신기하게도 육아라는 건, 아이의 개월 수에 따라 또 급격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불과 몇 개월 전, 친구가 월령별 성장 이야기나 힘든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줬을 땐 그런가보다 정도 였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때 친구 하소연에 더 위로하고 공감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며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혹시 내가 아이를 가지기 전 행동이 누군가에게 잠시 아픔이 되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몇몇 상황이 적진 않다. 미혼이었을 때 출산 휴가 중인 대리님이 계셨지만 더 좋은 기회로 이직을 한 것. 그 땐 분명 역할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너는 임신안 할 줄 아냐'라는 핀잔을 들어 도통 이해불가였지만 그럴 수 있을 거같다. 너무 어려서 내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다.
아직 신혼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도,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도 또는 어렸을 적 임신부 대리님을 배려하지 못했던 나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어찌 공감할 수 있겠는가. 비슷한 경험이 있다하더라도 시간차가 있고 느끼는 바는 모두 다르지아니한가. 또 손뼉이 딱 맞아 떨어지는 남은 없지 않겠나.
그 누구도 지금의 내 상황과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육아는 외로운 나와 아기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아기가 내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가 되어줄 때도 있겠지. (물론 속쓰리게 할 때가 더 많겠지만;;) 우리집 책장에 꽂아있는 어떤 책 제목처럼 외롭지만 지금 아주 잘 하고 있다고. 내가 나를 다독여줘야할 때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