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리 쓰는 진료리포트의 힘 (1)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이정표의 시간

by 인생정원사

저는 정원이와 많은 병원을 다닙니다. 매번 어떤 의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당시의 정원이의 상태는 어떠했는지 세세히 기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소아정신과의 특징은 진료보는 아이에 대한 의사의 직접적인 관찰, 그리고 부모보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폐스펙트럼 자녀의 경우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짧은 진료시간에 모든 관찰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지요. 전 그래서 1페이지 진료리포트를 만들어갑니다. 특히 대학병원은 재진 간 간격이 1년이 넘을 정도로 길기 때문에 꼭 만들어갑니다. 유명하신 교수님들 역시 환아의 진료내용을 두 기억하기란 어렵지요. 차트를 보고 예진의 리포트를 참조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그 대기가 길다는 두 분의 교수님 진료를 1년에 한번씩 다니고 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성장과 아이의 변화를 한번쯤은 업데이트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아, 정원이의 병원스케쥴을 간략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개인 소아정신과 : 35개월 부터 현재까지, 4~6주 간격으로 진료. * 페이퍼 작성 (간단히)

(2)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가. 경기도의 B대학병원의 U교수님: 만5세부터 장애등록에 따른 카스 및 에이도스 검사를 시행함

* 1년 주기로 내원 중임, 2-3년 주기로 위 검사를 추적검사함

나. 서울의 C대학병원의 C교수님: 만 5셉부터 발달클리닉으로 신경과 진료와 같은 날 내원했음

* 정원이 경기 이후, 비디오 뇌파검사 및 유전자/염색체검사를 함

* 2번 연장하여 중지될 뻔 했지만 다시 3년만에 진료예정임

다. C시의 대학병원의 S교수님: 집에서 1시간 거리. 약물치료나 기타 문의할 때 힌트를 얻기도 합

(3)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뇌전증 진료)

라. D시의 대학병원의 K교수님: 비상시를 위해 같은 지역의 대학병원으로 정기진료중 (2~3개월)


사실 리포트를 주변에 보여줘도 지금은 공감을 얻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 질문은 어쩌면 효율성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발달의 진척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다녔지만, 이제 소용이 없냐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가능성은 아이가 크고 발달그래프의 기울기가 점점 낮아질 수록 그 기대치도 낮아지게 마련입니다. 저 역시 기적을 바라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지요.

"이제 초등학교 3학년 특수학교까지 간 마당에 그렇게 노력을 기울일만 한 에너지가 있나요?"

"이 리포트를 가져가면 교수님이 다 보시기는 하나요?

. 또 현실적으로 대학병원의 진료시간은 짧기 때문에 한장 리포트를 읽을 시간조차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병원을 다닐까요?

정원이가 갖고 살아가는 자페스펙트럼 장애는 크면서 여러가지 다양한 난관에 부딪힙니다. 일상적인 상황과 약물에 대한 대응은 개인 소아정신과 주치의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대부분의 문제에서 만나는 상황은 대부분 여기서 해결됩니다.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씩 보는 대학병원의 의미는 또 다릅니다. 전학, 약물치료 등의 큰 이슈와 아이의 부작용 또는 상태 변화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듣고 참조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약하면서 다니기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 띄엄띄엄 교수님들을 만날때 당면한 현실에 대해서 여쭤보곤 합니다.

그럴때 전 '문제해결'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정원이의 성장'에 대한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U교수님은 2021년 9월 초진 때 지역에서 병원 다니고 있는데 멀리 재진이 필요하냐 물으신 적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온 1년을 기억하고 확인받고 싶습니다. 점검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요."

C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날인 2023년 6월에는 인사를 드리는 저에게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어머님은 꼭 일하시라고." 그것이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공부를 했지요. K교수님은 정기진료를 시작한 작년 초 제가 리포트를 가져가니 두고 가라고 하셨지요.

S교수님을 만났던 최근에는 정원이의 변화가 사춘기 이전의 뇌의 호르몬 농도 변화에 의한 내부지각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대할 때 그에 대해 설명해주고 맞춰서 행동하니 정원이도 전보다 변화가 극단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네, 힌트와 격려의 순간은 엄마인 저에게도 꼭 필요하거든요. 얼마전 주치의 선생님에게 내년에 출간할 책의 추천사를 받았어요. 2019년 9월 35개월 정원이의 첫 소아정신과 진료부터 지금까지 만6년을 꼬박 1-2개월 단위로 보았습니다. 만9세 정원이 인생의 2/3를 지켜보신 셈이라 저에게도 추천서튼 무척 뜻깊습니다. 추천사와 함께 고심하며 덧붙여 주신 말이 많이 와닿았지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건 어쩌면 좌절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건데.. 이 좌절의 성격이 좀 특이해요. 힘들고 길고 간간히 다시 올라오고.. 아직도 못받아들였구나, 하는 이런 성격인데 이게 사람을 많이 힘들게 하죠. 무너지고 멈춰버리기도 하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중에 굉장히 괴로운 일 중에 하나 같아요."

라며 추천사 말미에 ‘이 좌절은 특별한 사람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적어주셨어요.

저는 또 다시 위로를 받았지요.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는 사실이거든요. 저는 애써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고, 삶의 작은 기쁨, 소소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싶어. 그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요.


아, 그럼 진료레포트의 내용이 궁금하시다고요?


그것은 다음 편에 이어서 ... 말씀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sdgarde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