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 이전, 그땐 그랬지
비눗방울!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비눗방울 나오는 영상을 보고 아이가 '비눗방울'이라 말했던 순간을요. 그 순간은 섬광처럼 번득이며 찾아왔어요. 언어재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쯤 되었을 무렵이었어요. 그 순간 저는 '아, 드디어 우리 아이도 말문이 트이는구나!' 싶었습니다.
현재 정원이는 현재 표현언어는 공식적으로 무발화입니다. 의도를 가진 말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내지 못하지요. 한동안 이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저는 두 돌 영유아검진을 2018년 6월 대학병원에서 했습니다. 다소 빨리 한 것은 아이와 생활함에 있어서 의사소통에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아래 기록은 정원이 21개월 때 스마트 폰에 저장해 둔 메모장입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7년 반전입니다. 그 당시 의미 없는 외계어나 한번 우연찮게 나오던 말들을 모두 표현언어로 기록했었습니다. 아직 언어치료를 생각하지도 못했었거든요. 9월 18일 '까치'는 놀이터에서 까치라고 들었을 때 까치라고 분명 말했습니다. '비눗방울'이든 '까치'는 두 번 다시 재발화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정원이 머릿속 시냅스가 잠깐 연결이 되었을 때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겠지요.
<표현언어>
2018.7
엄마 아빠 맘마 데따 (자주 하진 않고 가끔)
7.15 까까 부웅부웅
8.23 바밥(밥)
8.25 이부 나가 고고 무울 아냐 으응
8.31 엉애(?) 고기!!! 앙가!! 안해
9.7 안아? 아카 데따
9.10 빠빠빱? 나,가,자 비비 미미
9.12 나가자 가까? 뎄다! 네에(?)
9.18 까띠(까치)*
9.19 오리(?) 데따 엄마!
9.21 더쟈?????? 언제나가??? 먼가 대화옹알이
9.25 응 아냐 아니야
9.26 나가 저또(젖소)*
9.27 자자*
10.3 엄마(몰래 연습)
10.4 지지*
10.8 엄마! 아빠!
10.9 부끄부끄
10.12 일*
<옹알이>
--옹알이: 가가 거거 고고 비비 바바 냐냐 네네 이이 아아 야야 오오 미미 데데 다다 노노 나나 *두음절 옹알이가 늘고 있음 약간 말하는 것처럼 들림
<수용언어>
호명+
조심 손잡자 나가자 이거봐봐 밥먹자 앉아 가자
*어린이집 단어 싫어함 대화중 그단어 나오면 울음
*수용언어는 성격인지 지시수행 안하고 포인팅 안해서 아직까지 잘 모르겠음
이후 C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정원이는 언어치료를 처방받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원이는 25개월부터 지금까지 만 7년간 단 한 주도 쉰 적이 없습니다. 물론 코로나 초기 전국민이 올스톱했을 때와 명절 연휴를 제외하면요. 얼마나 했느냐고요? 일단 언어치료만 살펴볼까요. 모두 경력도 길고 센터에서 원장/부원장 수준의 언어재활사를 만났었지요.
24-32개월: C대학병원 언어치료, 주 1회
30-65개월(만 5세 5개월): Y센터 언어치료, 주 2회
36-60개월(만 5세): E센터 언어치료, 주 4회 (정신과 실비, 치료사 2 중간변경) *장애등록 후 종결
48-68개월(만 5세 8개월): I센터 언어치료 (bcba), 주 2회
62-76개월(만 6세 4개월): D센터 언어치료 (무발화 전문), 주 2회
69-현재(만 9세):T센터 언어치료(QBA) 주 2-3회, 마이토키(AAC) 시작
만 4-5세 때는 주 5회 이상 언어치료를 했습니다. 그 외에 ABA, 음악, 미술, 감통, 특수체육, 수영도 시기별로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빠른 개입이 빠른 도달을 의미하지 않았았어요. 초보엄마는 치료를 매 순간 매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포 때문에 한동안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따라잡기를 바랐거든요.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수용언어는 작년에 1.5년 지연이었습니다(비공식).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동들은 검사실을 낯설어해서 수용언어 측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공식으로 언어치료실에서 시행했고 기대보다 높은 결과가 나왔어요. 다행스럽게도 지난 시간, 많은 언어 수업과 엄마의 혼잣말 수다가 아이에게 쌓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용언어 검사 결과로 나온 것이지요.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 '말문이 틔이면 다 좋아질 것이야'란 신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모든 언어를 모조리 기록했어요. 지금 보면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기록이지만 이것이 제 최초의 리포트지요. 구어의 발화는 모든 발달의 지표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연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이 리포트 안에는 '어떻게든 아이가 말을 했으면 하는' 저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눈물이 행간에 있었습니다.
7년 뒤, 지난주에 정원이의 참관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는 2교시에 절 보더니 반가워했지요. 알고 보니 반가워한 이유는 간식 때문이었지만요. 5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내 자식 같았고, 무언가 가르치시려는 선생님이 감사했고, 밝고 환하고 교실 앞 작은 신발장이 귀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정원이도 기분 좋았는지 그날 오후 수영과 언어 수업도 제법 잘했답니다. 미리 톡으로 전달받았지요. 5시, 집으로 돌아온 정원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번엔 기계가 아니라 1~10까지 표시된 작은 팝잇이었지요.
엄 마: 정원아, 오늘 언어 잘했다며? 네 생각은 어때?
정원이: [10]
엄 마: 오! 대박 잘했구나. 훌륭하다!! 그럼, 수영도 열심히 했어?
정원이:... [7]
엄 마: 그래그래. 우리 정원이, 최고다!! 아까 엄마가 간 참관수업은 어땠을까?
정원이:........ [6]
아이의 대답을 듣고 칭찬 많이 해줬습니다. 일과를 잘 해내서가 아니라 하루를 기억하고 그 수행도를 솔직하게 판단해서 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적이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고 AAC를 배우면서 치료실에서 많은 연습 끝에 집에서도 이렇게 일반화된 적용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치료사 선생님은 정원이가 수용언어와 표현언어의 갭이 크다 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고민해 주십니다. 장애에 대한 수용은 결국 아이의 눈높이에서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겠지요. 지금 이렇게 숫자로, 끄덕임으로 답을 해주는 것 또한 지난 노력들이 이뤄낸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담은 미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 최초의 기록은 충분히 의미 있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히 더 아이를 지켜보고 관찰한 마음이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기록이 쌓여 지금에 맞게, 또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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