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기다리고, 기억하다

by 인생정원사 선우

아주 오랜만에 정원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쓰자 마음을 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사진첩에 모아둔 기억만큼일까. 때로는 남겨진 물상이 기억으로 대체가 될 때가 있다.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향유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듯 슬픔을 견디는 방식도 다 다르다. 행복이란 어쩌면 슬픔이 알았기에 누릴 수 있는 감정일 수 있다. 인생이 기쁨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 소중함을 모를 것이다.


꽃은 그런 면에서 행복과 비슷하다. 살아있는 꽃은 영원히 피어있지 않다. 피고 지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꽃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책이 되었다. 돌본다는 것은 식물이나 아이나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식물은 내가 온전히 돌볼 수 있고 그 돌봄에 꽃으로 응답해 준다. 꽃이 없는 나무라면 뽀얗고 투명한 여린 잎이 꽃과 같은 기쁨을 준다.


혼자 피어있는 벨벳찔레


정원이는 어떤 꽃일까. 아마 선인장에 피는 꽃이 아닐까. 가시가 있고 아주 오래 공을 들여야 피는 꽃일 테다. 몸의 터프함과 달리 꽃이 아주 화려하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런 소원 같은 꽃일 것이다. 보기 드문 희귀한 꽃이라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

나는 어떤 꽃일까? 이미 마흔넷. 플라워 포티라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를 고단함이 내 몸에 새겨져 있다. 무리 지어 필수 없다. 아마 나는 어린 왕자의 장미ㅡ원종 장미라 할 수 있는 찔레가 아닐까 싶다. 장미보다 강하고 장미보다 소박한. 나는 정원이별의 찔레꽃이겠지. 그래서 나의 정원에도 찔레를 심었나 보다. 혹은 달맞이꽃이거나. 아니다, 가시가 있는 찔레가 낫지 싶다. 상처받기 싫으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하며 날 선 마음을 감추고 있을까. 찔레에 긁혔다며 장미가 아니라고 동정하는 [낯선] 타인은 모른 척하자. 찔레는 자신의 자리에서 저 혼자 뿌리내리고 지내고 있다. 슬슬 건드리며 자신의 삶에 빗대어 나에게 입대는 이들은 꽃의 마음을 모르니까. 꽃은 말이 없다. 그저 피어있을 뿐.


나는 장미꽃이 아니어도 괜찮다



1년이 흐르고 어느새 겨울이 지나 햇살은 봄을 담고 있는 듯 아름답게 땅을 비춘다. 흙속에 잠들어 있던 자그마한 새싹이 또 꿈을 꾸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꽃을 꿈꾸는 마음이다. 작년 봄도 이번 봄도 여전히 겨울의 태풍 끝에 맞이하고 있다. 태풍은 끝났지만 나의 정원은 바람이 휩쓸고 간 상처를 다독여야 할 시간이 왔다. 그렇다 해도 봄은 다시 왔으니. 봄은 용서의 계절이다. [타인]은 나의 정원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거리를 두면 될 일이다. 그들은 이 열린ㅡ울타리조차 없는 정원의 손님이 아니니까. 오시지 말라.


기쁨도 마찬가지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을 알 수 있다. 행복은 슬픔 사이사이의 기쁨을 알아차릴 때 누릴 수 있다. 행복은 견고한 바위가 아니다. 영원하게 이어지는 행복이란 없다. 흔들리는 바람 사이로 피어나는 꽃처럼 그 순간을 볼 수 있는 마음이 행복이다. 난 그래서 감히 나를 꽃이라 말할 수 있다. 가시가 있고 혼자 뿌리내린 작고 촌스러운 찔레꽃 말이다.


나는 그저 작고 촌스러운, 가시가 있는 꽃이다


태풍을 참조하시려면,

https://brunch.co.kr/@life-gardener/276


이전의 정원(이)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m.yes24.com/goods/detail/176076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