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거의 나에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간관계

by IN삶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무리의 중심이 되고 싶었지. 어릴 때는 그게 과해서 다른 친구들이 나를 무시하기도 했고, 엄마에겐 나를 봐 달라고 계속 아프다고만 했던 것 같아. 그럴수록 주위 사람들은 점점 더 지치고, 부정적인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아.


고등학교 때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 같아. 성인이 된 뒤로 나의 10대를 돌아봤는데, 남아 있는 것은 중학교 때의 두 친구뿐이더라. 그 친구들이 마음이 넓고 따뜻해서 나의 잘못도 고쳐주고 조언도 해 줬었는데, 나는 많이 어렸더라.




그래서 나는 항상 무리의 중심이 되고 싶어 했고,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어. 그래서 이번 일이 터졌던 거야. 너는 그 친구 A를 좋아했었고, A가 부정적인 말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했다는 것을 알아도 그의 옆을 맴도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거야.


그런 말을 해도 함께 해 주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하면 그냥 그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A를 더 싫어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A에 대한 반응은 보다 더 세고 예민하게 나갔던 거야.


그리고 10월은 특히나 더 예민한 달이었지.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돈 욕심을 부려 더 많은 일을 잡고, 시험기간이 3주였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학생회 일들도 처리해야 했으니까. 잠도 못 자고 많이 예민해서 살도 빠지는 상황이었으니까.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그런데 내가 믿고 있었던 친구가 내가 했던 말을 A에게 보여 줄 줄은 몰랐어. 아니, 상황이 그랬었어. 그리고 그 A는 내가 했던 말들에 대해 상처를 받았겠지.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나 보고는 ‘사실확인도 안된 말들을 타인에게 해도 되냐,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하냐’라고 했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럼 그 친구가 대화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말 안 했겠네?’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 상황에서도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몰랐어. 뒷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 상황을 설명하는 게 변명처럼 느껴졌어. 이젠 알지, 그 변명이라도 해서 내 상황을 사과받는 사람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은. 이번 일로 참 많이 배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 일과 관련 없는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5명의 친구들이 더 있었거든. 그리고 그 친구들의 절반 이상은 나보다 나이도 어렸고. 그런 친구들이 다 듣고 있고,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 만들어 둔 자리에서 나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어. 손은 덜덜 떨리고, 공포스러웠지. 꿈에도 나오더라. 그런 자리에서 사과를 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그래서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상황 성명조차 못한 채로 기분 나빴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사과했어.


내 말투가 무뚝뚝한 것은 인정해.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부모가 경상도 사람이다 보니, 말을 툭툭 뱉는 경향이 있어. 말투가 다정한 편고 아니고, 애교가 있는 편도 아니지. 목소리도 낮아서 더 퉁명스럽게 들렸을 테고, 한국인 장녀로서 자존심 역시 조금 작용을 했을 것 같아.


단 둘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모두가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이 일과 관계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웠어.


이런 감정들이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어. 그리고 죄인처럼 4시간을 앉아 있다가, 뒤따라 걸어오는 길 위에서 나는 결정을 했어.


이 관계에 나의 몫은 없구나. 내가 노력을 해야 이어갈 수 있는 관계라고 느껴진다. 이제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할 순간이구나. 이렇게 느꼈어.




그리고 그날 밤에 엄마와 통화를 하고, 중학교 시절 내 옆을 지켜주던 내 동창에게 전화를 하고, 많은 조언들도 들었어. 나와 한 번 다퉈봤던 친구라서 그 친구는 나에 대해 잘 알고, 내 성격도 알아서 알맞은 조언을 해 주었어.


음식을 나눠 줄 때는 나의 몫을 꼭 챙겨야 하는 것처럼, 관계에서도 나를 챙겨야 해. 그리고 관계는 서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을 때, 함께할 수 있는 거야. 미안함이라던가, 갑과 을에 대한 관계가 이어진다면,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고 할 수 있겠지.


이런 일은 반드시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었어. 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다시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해서, 남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그 자리가 너무 공포스러웠기 때문이지. 사실 아직도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래서 계속 합리화를 하고 있어.


그리고 뭐, 가장 믿었던 친구 B가 관계를 회복하자며 이 자리를 만들어 주었지만, 그 마음은 알지만 그 친구에겐 조금 서운할 따름이야.


적어도 나는 그래.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데 술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당사자들끼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어야 했어.


시험 직후에 그런 이야기를 하던 것도 힘들었지만, 난 참 쌓인 게 많았던 것 같아. 힘들었던 10월,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났던 일.




뭐가 되었든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 말은 아낄수록 가치는 더 커지고, 들을수록 더 잘 말할 수 있어.


나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해. 곧고 가끔은 아름답게 구부러졌으며, 차갑지만 따뜻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아주 큰 나무가 되고 싶거든. 지금은 내가 뿌리를 내릴 볕 잘 들고, 비가 적당히 내리는 좋은 토양을 찾고 있어.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나만 안 무너지면 돼.

버티고 견디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