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는
사실 내가 뭐라고, 그것을 정의할 수 있을까.
모든 이들이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목적이 있을 것이겠지. 그리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타인의 가치를 내가 감히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이 돈을 좇는 사람이든, 명예를 좇는 사람이건, 가끔은 기상천외한 가치를 보기도 한다. 이 역시 나의 기준이고, 그들에게는 일반적일 수 있겠지. 내가 살아온 방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하려 하면, 힘들다.
간난이의 울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바람이 부는 이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어떻게 느끼면 재미있을 수 있겠다. 그것을 연구하는 자들은 우리는 ‘학자’라고 일컫는다.
나는 학자가 아닌, 지극히도 평범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상을 보고 있자면, 흥미롭다.
이해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워, 나는 보통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해해 보려 노력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저 그들을 존중하곤 한다.
존중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렵지 않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 그리고 너의 선택에 대해, 너의 인생이기에 나는 나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첨언할 수 없다는 것. 그 정도로 해석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까딱하단 정말 많은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기에 줄이겠다.
적어도 타인의 가치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나의 가치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나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내가 어디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나의 본질을 알 수 있으며,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다.
포기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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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어디에서 왔으며, 포기란 무엇인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기의 뜻을 완전히 놓아 버리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최근 일을 겪고 나서부터, 포기는 나에게 다른 단어로 정의되었다.
포기는 또 다른 선택일 뿐이다.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 그리고 그 안에는 ‘다른 것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단어들을 정리해 나열해도,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그들이 가진 보편적인 의미를 항상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단어 선택으로 인해 내 감정을 비롯한 일부 삶이 무너지는 꼴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에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내 인생의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나의 엄마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설명이 필요하다.
편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포기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 포기가 나약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아는, 메타인지가 되는 사람이라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는 본인의 최선을 다하였을 때, 본인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에 한 해 사용할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IN삶의 전신인 인생은 삼세번이라는 말도, 거기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을 시도해야 내 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다- 생각하는 나의 가치관 때문일까.
가치관, 인생관 비슷한 이야기지만 이것들을 명확히 해 두어야 현명한 빠른,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는 각기 모두 다르고, 그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