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들여 맛을 얻는 방법
빠르고 편리한 것은 효용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조금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느리고 불편하게 가야 하는 길이 있다. 어디서나 적용될 것 같은 이야기이고, 부엌에서도 물론이다.
면도 좋고 밥도 좋지만, 그날은 부드럽고 녹진한 질감이 유난히 당겼다. 마침 냉장고에 지난번에 해먹고 남은 버섯이 가득했다. 그래서 정한 저녁메뉴, 버섯크림리조또.
리조또 만드는 법을 검색해 보면 찬밥이나 즉석밥을 끓여 만드는 레시피가 많이 나온다. 이미 익은 쌀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고 간편하다. 하지만 정석대로 조리하는 것과 맛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시간을 대가로 맛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에, 잠자코 쌀부터 불려 두었다. 오리지널 리조또에 사용하는 쌀은 우리가 평소 먹는 쌀과는 다른 품종(알보리오 등)인 것은 알지만, 갑자기 쌀까지 구해올 도리는 없고, 나름대로 느낌을 살려보기 위해 멥쌀과 찹쌀을 적당히 섞어 한 컵. 죽이나 리조또는 쌀 한 컵이면 딱 2인분이 나온다.
쌀은 한 번 씻어 체에 밭쳐 놓고(리조또를 할 때는 쌀을 씻거나 불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뭐, 취향의 문제이겠다), 버섯을 꺼내 손질했다. 지난번에 전골(https://brunch.co.kr/@life-is-egg/9)을 해 먹고 남은 참타리, 백만송이 버섯들과 양송이 버섯 한 팩. 손질한 버섯이 제법 궁중팬을 가득 채울 만큼 수북하다. 버터를 몇 조각 넣고, 오래 볶으며 버터가 탈까봐 올리브유도 조금 넣고, 향을 더하기 위해 다진마늘도 약간만 추가해서 달달 볶으니 이내 기가 막힌 향기가 부엌을 넘어 온 집안을 채웠다. 버섯이 머금은 제 물기를 모두 토해내 팬이 흥건해지고, 다시 그 수분이 모두 날아가 바싹 마를 때까지 십여 분이 훌쩍 넘도록 끈질기게 뒤적이니 그 많던 버섯이 팬 바닥도 다 못 채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부피는 줄어들었지만 풍미는 그 안에 농축되어 있을 것이었다.
넓은 팬에 새로 기름을 두르고 다진 양파와, 잘게 썬 베이컨을 차례로 넣어 가며 볶아 익혔다. 그 다음으로는 불려둔 쌀. 새하얀 쌀알이 약간 투명해질 때까지 뒤적이다 보면 팬에 들러붙기 시작하는데, 리조또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잔뜩(한 800ml쯤..?) 준비해 놓은 닭육수를 조금 부어 졸아들 때까지 익히고, 또 조금 더 부어 좀 더 익히고, 한 번 더 부어 팬에 붙은 것들을 살뜰히 긁어 디글레이징하고, 그렇게 예닐곱 번을 반복해서야 쌀이 부드러워졌다. 손을 쉴 틈이 없는 과정이다. 쌀이 거의 익었다 싶어 잠깐 뚜껑을 덮고 뜸을 들이고, 그 사이에 치즈를 갈았다. 파스타나 에그인헬 같은 간단한 양식을 자주 해 먹는 입맛이기에 냉장고에 상비해 두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덩어리. 넣는 양은 늘 이렇게 정한다. 이거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은 양에서 조금만 더.
이 상태로도 바로 먹을 수 있을 만하게 익은 리조또에 아까 볶아 두었던 버섯과 남은 육수, 고소함을 더하기 위한 약간의 생크림을 넣고 좀더 끓였다. 이탈리아 사람들 취향보다는 좀 많이 퍼졌겠지만 내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니까. 맛을 보아 마지막 소금 후추 간을 하고, 정말 마지막으로 갈아둔 치즈를 넣어 잘 섞으면 완성. 가스불 앞에서만 장장 50분이 걸린 굉장히 손 많이 가는 요리다.
하는 데는 오래 걸려도 먹는 데는 얼마나 금방인지. 줄어드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지만, 보드랍고 향기로운 것이 술술술 넘어가니 숟가락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 시간과 정성(그리고 내 손목....)을 주고 행복을 산 한 끼, 제법 이문이 남는 맞바꿈이었다.
참타리와 백만송이버섯 반 팩씩 총 2480원
양송이버섯 한 팩 3480원
버터 세 조각 167원
올리브유 두 큰술 정도에 325원
다진마늘 1/3큰술 정도, 65원
집에 있는 멥쌀은 3kg에 15900원짜리(인터넷의 호평을 보고 골든퀸3호 품종을 사보았는데 이것 밥맛이 정말 훌륭하다. 추천할만함), 찹쌀은 예전에 죽을 끓이려고 조금 사놓았던 거였는데 구매가를 모르겠으니 대충 마트가격으로 100g에 500원 정도. 쌀 한 컵에 150g이니까(정확하다. 방금 부엌에서 재어 보고 왔으니까) 둘이 반 컵씩이면 합쳐서 773원쯤
양파 반 개 400원
베이컨 두 줄 533원
닭육수용 치킨스톡 두 큰술 2152원
생크림 100ml 1130원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200g짜리 덩어리를 세일할 때 7700원에 구매했었다. 무게를 달아보지 않았지만 넉넉히 10g 정도는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385원
이상 리조또 두 그릇에 11890원.
정석대로 제대로 만든 맛있는 리조또였으니 이 정도면 참 헐하다 싶다가도, 이건 아무래도 내 인건비를 더해야 계산이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뭐,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다는 게 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