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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달걀 Jan 03. 2021

6204원의 핫케이크 정식

고소하고 달콤한 휴일의 맛

해먹기

부모님과 살 때 한두달에 한 번씩은 주말 아침으로 핫케이크를 먹었었다. 프라이팬 사이즈만큼 큰 핫케이크를 한 봉지 다 구워 쌓아 놓으면, 네 가족이 둘러앉아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은(핫케이크믹스 한 봉지는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다) 그대로 거실 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면 그 날 내내 왔다갔다하다가 출출하면 한 장씩 집어먹는 거다. 그렇게 하루종일 먹고 나면 물릴 만도 한데, 또 한두 달 뒤 어느 일요일 아침에 핫케이크 굽는 냄새가 솔솔 나면 다시 마음이 설레곤 했다. 그래서 핫케이크 - 팬케이크가 아닌, ‘오*기 핫케이크’!! - 의 고소한 냄새와 달콤한 맛은, 내겐 일요일 아침의 행복한 기억이다.


독립해 2인 가족을 꾸린 지금도 핫케이크는 우리집의 인기있는 주말 브런치 메뉴이다. 나름대로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물 건너 온 유기농 팬케이크 믹스라든가 직접 배합한 반죽을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주입식 입맛이란 무서운 법이어서 결국 추억의 '핫케이크' 믹스를 찬장에 상비하게 되었다.


핫케이크를 구울 때는 믹스 봉지 뒷면에 씌어 있는 가이드를 준수하는 편이다. 큼지막한 계량컵 안에 믹스 200g을 재어 넣고 우유를 100ml 계량해 따른다. 물론 물을 넣어도 괜찮지만 우유로 하는 편이 더 맛있으니까. 거기에 달걀을 하나 깨어넣고 되직하게 섞일 때까지 휘저으면 반죽은 금세 완성이다.

반죽을 만드는 동안 팬은 미리 달구어 놓는 것이 좋다. 작은 프라이팬을 약한 가스불에 올려놓았다가, 반죽 준비가 다 되면 식용유를 조금 떨어뜨려 키친타올로 슥 한번 바르고 닦아낸다.


별달리 어려울 것 없는 이 공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불 조절이다. 사용하는 열원과 팬에 따라 적절한 세기가 다를 것이어서, 타거나 설익어 마음에 들지 않는 몇 장을 감수하면서 경험으로 익혀야 한다. 가스레인지 조절부가 찰칵 하고 고정되는 '약' 지점을 지나쳐 한없이 '소화'쪽으로 움직이다가, 간신히 불꽃이 꺼지지 않는 직전의 지점에 놓는 것이 내가 찾은 최적의 화력이다.


핫케이크만으로는 아무래도 식탁이 심심하다. 식사를 책임지는 입장이 되고 보면, 소위 탄-단-지 밸런스도 신경을 아니 쓸 수가 없는 법. 그래서 이렇게 핫케이크 넉 장을 반죽해 구워내는 동안, 부엌 한편에선 오븐이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다. 베이컨을 프라이팬이 아닌 오븐에 구우면 기름도 안 튀고 냄새도 안 나고 아주 편하게 딱 적당히 익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왜 여태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팁이었다. 베이컨은 마트에서 한번에 두어 팩씩 구매해 떨어지지 않게 챙겨 놓는데, 소비 속도가 냉장보관 기간보다는 느려서 주로 냉동으로 쟁이게 된다. 통째로 얼리면 사용할 때 저들끼리 붙어 있어 떼어낼 수가 없으니, 조금 귀찮더라도 종이 호일에 한 줄 한 줄 얹어 아코디언처럼 착착 접어 보관하면 꽁꽁 얼어 있어도 분리가 쉽다.


핫 푸드가 모두 준비되면 브런치용 큰 접시를 두 개 꺼내 두 명분의 음식을 나누어 담는다. 오늘 브런치의 푸른 빛깔은 새벽배송 업체에서 주문한 그린믹스 샐러드가 담당해 주었다. 세척되어 잘게 썰린 여러 가지의 샐러드 채소가 잘 섞여 있으니 참 편한 일이다. 한 팩의 채소를 절반으로 나누어 수북이 담고, 나름의 포인트를 위해 마침 집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반 갈라 예쁘게 얹어 주었다. 그리고 접시의 다른 한 켠엔 딱 예쁘게 구워진 핫케이크를 두 장씩, 그리고 베이컨도 두 줄씩. 샐러드가 아무래도 심심한가 싶다가 언젠가 카프레제 한 번 해먹고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발사믹 소스가 생각나 한 번씩 둘러 주었다. 아,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핫케이크 위에 버터 한 조각씩. 메이플 시럽은 취향껏 부어 먹도록 식탁 위에 통째로.

이만 하면 겉보기로 보나 맛으로 보나 어디서 사먹는 것에 모자라지 않는 훌륭한 브런치 한 상이다. 접시에 묻은 마지막 메이플 시럽까지 핫케이크로 싹싹 닦아 먹고, 컵에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주말에 대한 실감과 행복감이 나른한 포만감과 함께 훅 몰려오는 듯하다. 아, 이제 뭐 하지!



계산하기

핫케이크 믹스 1kg짜리 봉지에 3000원, 200g 썼으니까 600원

편의점에서 우유 500ml짜리 1800원, 100ml 썼으니까 360원

달걀 10개들이 4980원에 구매했으니 한 알에 498원

집에 있는 메이플시럽의 인터넷가가 500ml에 18000원, 부어먹은 양이 어림잡아 40ml쯤 될까? 1440원

450g짜리 앵커버터(시중가 8000원)를 8*3*6=144등분해 냉동해놓고 쓰니까, 2조각이면 111원

이상 핫케이크 2인분에 3009원

마켓*리 믹스샐러드 1팩에 1530원

방울토마토..는 1kg에 9950원 주고 샀는데, 3알 무게가 40g이니(토마토 한 팩에 몇 알이나 들었을지 고민하다가 부엌에 가서 저울로 재 봤다) 398원

발사믹소스 150ml에 10000원정도인데, 샐러드에 뿌린 양이.. 3ml쯤? 그만큼만 해도 200원이다(헉)

베이컨은 마트에서 3팩 묶음 행사로 8000원에 구매했는데, 한 팩에 10줄 들었으니까 4줄이면 1067원

이상 사이드 메뉴 2인분에 3195원


이 날 두 명분의 브런치를 만드는 데 총 재료비는 6204원이 들었다.

카페에서 사 먹으면 1인분에도 그 두 배는 받을 테니 집에서 해 먹는 보람이 상당한 메뉴인 셈이다.

(물론 가스, 전기, 수도요금은 물론 인건비, 공간비용까지 전부 고려하지 않은 어디까지나 재료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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