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 진다는 기대.
평생 너를 사랑하겠단 열정.
좌절 끝엔 강해질거란 용기.
낭만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다. 돌아보면 첫 낭만이라 할 수 있는 건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의 우정이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오랫동안 봐왔지만 만나기만 하면 여전히 철없이 지내는 녀석들. 그렇기 때문에 30줄에 들어선 지금도 동심의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낭만은 전역 후 1년 동안 도전했던 영어 공부였다. 민망하지만, 학창 시절 항상 바닥에서 등수를 깔아줬던 성적이었기에, 영어는 넘지 못할 산으로만 여겨졌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무언가 하나만큼은 해보아야겠단 생각으로 도전했고, 원하는 주제에 대해 간단한 발표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공부 막바지 즈음, 학원비와 생활비 그리고 복학을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두 달 간 일했던 경험 또한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자 낭만으로 남아있다.
다른 경험들도 있지만, 나에게 낭만이란 내 삶에 어떤 서사를 부여하는지에 관련된 것 같다. 철학사에서 낭만주의가 발현하게 된 계기도, 합리와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요즘의 우리들도 현실의 합리에서 벗어나 나의 서사를 완성하고 싶은 욕구가 이전보다 강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낭만을 쫓을 때에는 감수할 위험이 많다. 현실의 합리를 거슬러야 하기에 작은 도전에도 기회 비용과 매몰 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더욱 두려운 것은 도전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내 나이에, 내 여건에 더 이상의 도전은 사치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낭만 실패의 가장 큰 리스크이다.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을 존중한다. 어리석고 어렸던 때에는 단순히 도전을 포기했기 때문에, 안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지킬 것이 많아지면 그럴 수 있다. 단지,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남들은 이렇고 저렇다는 고나리 짓을 하기 보단, 나를 돌아봤을 때 어떠한가?
만화 원피스의 정상결전에서 흰수염은 루피와 에이스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성가시기만 할 뿐인 이성의 집념체. 젊고 꼴사납다.
그런 바보는 좋아한다.
도전은 언제나 꼴사납다. 능력 밖의 일을 이루려 하기에 겪는 우여곡절은 성가시다. 꿈쟁이들은 늘 주제 파악을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그런 바보는 늘 합리적이길 강요하는 세상에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목소릴 만들어왔다. 굳이 이런 거창한 저항이 아니더라도, 작은 낭만으로 한 번 더 웃고 울 수 있다면, 팍팍한 삶에 정붙일 이유 하나 쯤은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