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답은 뻥이었다.

by 인생실험실

처음 연재부터 답에 대해 작성해 왔기에, 3회차인 지금도 답에 대해 얘기하는 건 지루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연속해서 답을 주제로 서술하는 이유는 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입에 앞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살면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한참 진로를 고민하던 21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당시 21살의 나는 뒤쳐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20살의 학교생활을 돌아볼 때, 흥미 없던 학과 공부와 더불어 이러한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된 성적표가 오랜 시간 발목을 잡을 것 같아 무서웠다. 학교를 계속 다녀도 학업에 대한 태도와 성적은 그대로일 것 같아 도망치듯 휴학을 신청했다.


그렇게 군대를 알아보는 중, 생각처럼 빨리 군대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대로 시간을 버리면 더 큰 자괴감에 빠질 것 같아 공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성인이 된 후 처음 벌어보는 돈이었다. 커피 한 잔을 편히 사먹지 못했던 20살 때와 달리, 소소한 욕구는 대부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마음 편히 간식을 사 먹고, 게임 캐쉬를 결제하고 맛있는 음식과 가끔 여행을 다니면서 돈 쓰는 재미를 알았다. 그러나, 인생을 개선할 답을 찾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여전했고, 그에 대비되는 얄팍한 자유감에 취해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얕은 자유감은 딱 3개월까지만이었다. 말초적인 자극으로 본질적인 문제에서 도망치다, 돈이 떨어지면 여전히 무기력을 직면 할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래서 21살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첫 고비를 맞이한 나이였다. 매일 인생이 왜 이리 힘들까, 나는 왜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까 자책만 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스타특강쇼(2012) 박신양 편의 캡쳐 본을 보게 되

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박신양은 이렇게 말했다.

스타특강쇼_박신양_편.jpg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q95uYkdpH7k\\



지금와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이 말을 보았을 때에는, 뒤통수를 머리로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그 동안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게 해줄 이상적인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사실은 나를 더 근사하면서도 안락하게 만들어줄 요술램프를 바라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다만, 생각해보건데 이런 함정에 빠진 이유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는 자존감의 문제. 다른 하나는 적확하게 들어맞는 답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전자의 이유는 기회가 되면 추후 연재하도록 하고, 오늘의 주제인 후자의 이유에 대해 논의해보자.


사실 정답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자존감의 여부를 떠나 흔히들 빠지는 함정이다. 그리고 딱히 틀린 말 같지도 않다. 그나마, 성인이 된 이후로 답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답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맥락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고 얘기해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답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로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 되었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답 획득에 대한 갈망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처럼 현재의 불만족에 대한 해결 욕구일 수 있고, 그러한 맥락에서 답은 상황과 필요에 근거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곧,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변한다면 나에게 필요한 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답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가변적이다. 그런데, 수시로 답이 바뀐다면 그것을 답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점 때문에 기존에 답이라 여겨왔던 삶의 태도 혹은 사고방식이 다른 상황에서는 문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과감하게 ‘답은 허구적’이라 하고 싶다. 좀 더 명확히는 답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적’이라 하고 싶다.


분명 답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일 수는 없다. 이미 답은 사회가 탄생한 이래로 논의되어 온 만큼의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으며, 그만큼 실재한다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논의 되어온 담론들에 앞서 답이라는 개념 자체를 허구적이라 생각한다면, 정답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익숙하진 않겠지만, 답을 잃어버린 대신 길을 만들어가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 그것이 답 없는 인생의 매력이지 않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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