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사람

by 인생실험실

답 없는 사람.


혹시 주변에 답 없는 사람이 있는가? 또는 스스로를 답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대개 알 듯, 답이 없다는 말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더 이상 상황을 개선할 수 없을 때 쓴다. 그리고 이런 뜻의 수식언을 사람에게 붙일 때에는, 대상에 대한 혐오가 터지기 일보 직전일 때에 쓴다.


문제는, 이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때이다. 스스로를 답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자기 혐오다. 물론, 그리 생각하게 된 과정에는 충분한 인과관계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밉다는 것은 자력으로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정이자 구원에 대한 포기이다.


나 역시 내가 혐오스러웠던 적이 있다. 10년이 훨씬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X신, X발X끼라 순간마다 육성으로 뱉어 댔고, 그에 대한 관성 때문인지, 지금도 작은 실수에 나의 무능함을 크게 여기며 자책한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각자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죄책감이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시절, 소중히 생각하던 사람들을 주변의 음해로부터 지키지 못한 무능함. 이러한 무능함을 개선하지 못해 지속했던 자기혐오. 결국 나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무너지게 만들었던 죄책감이 문제였다.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를 꽤 오랫 동안 답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일정 부분은 그리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나는 어디서부터 좌절했는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각 문제마다 마땅한 해결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정답이란 때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고, 어쩌면 다른 차선책들에 비해 얼마든지 열등할 수도 있다.


단편적으로 보기에 정답은 우리를 잘 사는 인생으로 이끌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답에 얽매이는 순간 우리는 정답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필자는 답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통의 의미로 통용되는 답 없는 사람이라기보다, 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어떠한 상황에도 유연해질 수 있는 답 없는 사람. 답 없이도 얼마든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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