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by 인생실험실

생각해보면, 열심히 사는 것이 즐겁단 걸 처음 알았을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사실은 공부를 하기 싫어서, 대외활동으로 도피했던 것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연찮게 획독한 경험들도 많았다.


자부심.


처음 자부심이란 단어를 들었던 건, 고등학교 당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였다. 1년 간의 활동 마무리에서 마지막 대미는 연말 축제였고, 미숙함에 비해 큰 규모의 행사를 준비하면서 친구, 후배들과 많은 좌충우돌을 겪었다. 여러 선생님과 친구들에 의해 잘 마무리 하긴 했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 돌아보면, 나이에 걸맞게 참 부족한 점이 많았다. 사실, 부족한 것은 축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지도 선생님은 우리에게 축제를 포함한 1년 간의 활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자부심이란 말의 구체적 어감을 몰라 다소 의아했지만, 당시 선생님께서 우리의 성장을 응원해주시는 마음, 더불어 우리를 선생님의 자부심으로 여겨주셨단 좋은 감정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자부심은 언제 사용해야 적절한 단어일까? 국어사전에선 자부심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자부심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부분에 관련 있는 것 같다. 이미 알 듯, 우리는 성과에 의해 가치와 능력이 측정되고, 능력은 본질적으로 남에게 얼만큼의 효용을 가져다주는지에 따라 평가 받는다. 그래서 자부심은 기본적으로 타인이나 조직에 의해 입증을 받을 때에야 획득할 수 있는 감정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자부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직장에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가 되고, 맡겨진 일에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다면 송구하게 처신하는 것이 응당하다고들 한다. 부족함은 타인에 대한 피해이자, 무례이니까.


그렇기에 자부심이란 말은 우리에게 멀고도 과분하게 느껴진다. 다만, 자부심을 이상의 관점에서만 보기엔 중요한 부분이 빠졌단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자부심이 인정을 받아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면, 인정을 하는 주체가 꼭 타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성과가 불만족스럽더라도 그 과정에 자신의 성실함과 노력을 알았다면, 충분히 인정할만하다. 가치가 대단하지 않다 생각되도, 그 중에 자랑스러워 할만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당시 선생님이 우리를 보고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고 하신 말씀 또한 대단한 성과 때문이라기 보다, 각자의 애로사항을 얘기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경험, 노력 대비 시원치 않은 성과임에도 각자의 정성을 알아주는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


어른이 되고도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이전보다 자부심 느끼기 어려워졌지만, 그 때 선생님께서 주신 가르침은 스스로 성숙하는 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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