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Belongings
나는 2003년에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대전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기적인 장거리 이동을 했다. 지금도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는 명절, 가족 행사 등으로 수십 번의 장거리 이동을 했고, 그 반복학습을 통해 얻은 결론이 하나 있다.
이동은 무조건 가볍게
가까운 곳을 가든, 먼 곳을 가든 나는 이동시 가지고 다니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말 그대로 정말 노.력.한.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이동하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총동원한다. 사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게 THE BEST겠지만, 지갑이나 스마트폰 등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 하는 게 꼭 있다. 스마트폰도 휴대폰도 무선호출기도 없던 그때 그 시절에는 엽전 몇 냥만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을 텐데...(너무 갔나?)
곧 설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민족 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오랜만에 본가에 간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기다 보면 어느새 이민가방을 끌게 된다. 물론 꼭 가져가야 하는 물건이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메기 힘들다면 캐리어를 끄는 게 좋겠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물건 자체를 만들지 말자는 주의다.
가져가야 하는 무거운 물건이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라면? 운송업체를 이용하는 건 어떨까. 비용이 부담이라면? 선물을 좀 저렴한 걸로 바꾸고 차액을 운송비용에 쓰는 건 어떨까. 무겁고 귀한 가족 선물을 이고 지고 메서 산 넘고 물 건너 겨우 집에 도착했다고 치자. 가족들에게 그 선물을 건넸을 때, 나의 고생을 보상해줄 가족들의 진심 어린 감사와 사랑을 원하지만, 돌아오는 건 왜 이런 걸 고생하면서 가져왔냐고 속상해하시는 어머니의 잔소리일 수도 있다. 뭘 들고 가든 자기 마음이지만, 가족들, 특히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겁고 귀한 선물보다 가볍고 밝은 자식의 얼굴 아닐까.
다가올 설 연휴를 대비하여, 서울에서 대전으로 KTX를 타고 갈 때 가져가는 나의 필수품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 정리해보려 한다.
예전의 내가 본가로 갈 때 꼭 챙겼던 것들.
읽을거리: 책 or 아이패드(+ 충전 케이블과 콘센트)
들을 거리: 아이폰(+ 충전 케이블과 콘센트, 아이패드용과 별도로 준비) or 아이팟 클래식(+ 충전 케이블), 이어폰
먹을거리: 배가 고프지 않으면 수미칩 오리지널, 배가 고프면 주먹밥(서울역에서 구매)
입을 거리: 입고 가는 옷 + 1박이나 2박이라면 날마다 입을 윗도리, 아랫도리, 속옷, 양말
바를 거리: 내가 쓰는 스킨케어 제품(피부가 건조하다)
닦을 거리: 내가 쓰는 샴푸(두피가 민감하다), 칫솔, 치간칫솔
넣을 거리: 위의 물건들을 다 담을 수 있는 책가방
건넬 거리: 회사에서 받은 명절 선물세트 + 서울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하는 귀한 것들
지금의 내가 본가로 갈 때 꼭 챙기는 것들.
읽을거리: 아이폰(충전 케이블과 콘센트는 본가의 것으로)
들을 거리: 아이폰, 이어폰 - 아이팟 클래식의 옛날 감성이 좋지만 그 감성 때문에 140g을 추가할 수 없다.
먹을거리: X - 본가에 가면 어차피 과식할 예정이니 이때라도 배를 비운다.
입을 거리: 입고 가는 옷 한 벌만. 엄마와 사이즈가 비슷해서 위, 아래, 속옷, 양말은 엄마의 것을 입는다.
바를 거리: 엄마 꺼 - 며칠은 견딜 수 있다.
닦을 거리: 엄마 꺼 + 칫솔은 새것 - 신기하게도 본가에는 언제나 새 칫솔이 있다. 그것도 여러 개.
넣을 거리: 외투의 주머니
건넬 거리: 미리 대전 집으로 도착하게끔 주문하거나 대전에서 구입(제일 좋은 건 송금)
내가 이토록 가지고 다니는 것의 무게에 집착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토익강사 시절, 매일 무거운 LG 노트북을 들고 출퇴근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목이 너무 아파 정형외과에 갔더니 무거운 노트북을 한쪽 어깨로만 들어서 척추가 휘어지고 결국 그 때문에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부터 나는 최대한 가지고 다니는 것의 무게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때 발목 물리치료를 받으며 들었던 생각은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건 힘자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게,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게 자랑이 아닌 듯.
나도 무수히 무거운 짐들을 들고 왔다 갔다 해봤지만 남는 거라곤 엄청난 피로와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뿐이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나도 (내 기준으로) 발전하면서 예전에는 무겁게 가지고 다녀야만 했던 것들이 지금은 가벼워지거나 혹은 여러 장소에서 공유할 수 있는 걸로 대체되어 더 이상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가장 무거워했던 물건은 노트북과 충전 케이블인데 아이폰과 모바일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심지어 영상 편집까지도.
이번 설에도 나는 외투 주머니에 완충된 아이폰과 에어팟 프로, 그리고 지갑을 넣고 본가로 향할 것이다. 기차에서는 브런치에 올릴 글을 다듬고, 집에서는 엄마 옷을 입고 집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위한 선물은 가볍게 토스!
*하지만 이 글은 토스 광고가 아닙니다. 글의 내용과 리듬이 맞아서 토스라고 쓴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