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함께 있는 풍경

마그리트 <빛의 제국>

by 끌로이


1. 새집에서의 첫날밤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갔다. 공원을 끼고 단독 주택과 타운하우스 단지가 있는 한적한 동네로의 이사였다.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선 북적대는 신시가지에서 벗어난 다소 화석화된 곳이었지만 그런 차분함과 예스러움이 좋아 우리는 이 동네를 선택했다.

새집으로 이사 간 날, 벚꽃은 만개하기 시작했지만, 밤은 여전히 쌀쌀한 그런 계절이었다.

이사의 노곤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안방 커튼을 내리려는 순간, 창 밖 무엇인가 내 눈에 들어왔다.

길 건너, 가로등 한 대가 마치 대낮인 것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사실 저 가로등 불빛 때문에 커튼을 닫으려던 찰나였다). 양 옆으로 벚꽃 나무들이 등의 빛을 받으며 수줍게 꽃잎들을 내밀고 있었고, 뒤로는 단독주택단지 창문에서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평범하게 그지없는 풍경이 왜 나의 이목을 잡았을까? 새집에서 처음 보는 밤 풍경이 낯설 법도 한데, 너무나도 익숙하기도 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순간 생각이 났다.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속 장면이랑 흡사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캔버스 밖으로 나와, 3차원의 공간에 펼쳐진 것 같았다.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웠다.

그렇게 나는 낯선 공간에서 익숙함을 발견했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이사 첫날밤, 새 집에서 본 창 밖 풍경




2.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 (1898 - 1967) - 그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의 작품은 많이 봤을 것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 특히 기업 광고에서도 제법 많이 등장했다. 벨기에 출신의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과 풍경들을 낯설게 배치함으로써 그것들을 ‘다시 보게’하여 관객에게 사유를 열어주는 초현실주의 (Surrealism) 작가였다.

이런 기법을 데페이즈망이라고 하는데, 익숙한걸 다시 보게 함으로써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상에 대해서 의문을 하게 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골콩드>는 대표적인 데페이즈망이다. 똑같은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들은 “익숙한” 사람이지만, 땅이 아닌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은 “낯설다”. 사람은 각자가 다른 개성이 있지만 정말 다른 존재일까? 개인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마그리트 <골콩드>



<빛의 제국>도 마그리트가 여러 차례 연재한 회화 시리즈이다. 집 앞에 깔린 어둠을 밝히기 위해 가로등이 켜져 있고, 집안을 밝히는 조명이 창 밖으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하늘은 밝은 대낮처럼 밝고 맑다.


밤은 항상 어둡고, 낮은 항상 밝다. 내가 아는 이 공식이 맞는가? 세계는 정말 내가 보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낮과 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는 걸까…?

마그리트는 본인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아꼈다고 한다. 그는 작품은 설명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관객이 그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는 실제로 이런 말을 남겼다;

“ The real mystery of the world is the visible, not the invisible.”
“ 세계의 진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자체에 있다.”

- René Magritte, *Les Mots et Les Images* (1929) -


그렇다면 <빛의 제국>을 통해 마그리트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었을까?



3. 어느 날,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 나타난 마그리트의 그림


새집으로 이사한 첫날밤. 낯선 공간 속에서, 창밖 어디선가 익숙한 분위기를 마주했다.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감정은 서로 부딪히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함께 스며들면서 위안을 주었다.


어쩌면 나는 그날, 마그리트의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체험’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 속 정말 평범한 순간에도 예술은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일상 역시 한 편의 그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예술이 좋다.


그날 이후, 나는 잠들기 전 커튼을 완전히 내리기 전에 창밖의 가로등을 잠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너무 밝아서 결국 커튼은 닫게 되지만, 날이 밝을 때까지 조용히 나를 밝혀주는 그 가로등의 존재가 좋아졌다.


매일 밤 〈빛의 제국〉을 만날 수 있어서,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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