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계속 증명하려고 할까

by 생각하는감자

“요즘 뭐 하고 지내?”


가볍게 던진 안부 같지만, 이 질문은 이상하게도 늘 시험지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물음에 근황 대신 결과를 꺼내 놓는다.

어디에 다니는지, 무엇을 준비하는지, 얼마나 바쁜지.

마치 지금의 내가 쓸모 있는 상태임을 설명해야 할 것처럼.


어릴 때도 우리는 끊임없이 증명했다.

시험 점수로, 상장으로, 말 잘 듣는 태도로.

어른들은 그것을 성장이라고 불렀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잘하면 칭찬을 받았고, 못하면 더 노력하면 된다고 배웠다.

그때의 증명은 비교적 단순했다.

정답이 있었고, 기준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학교를 벗어나고, 정답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다.

이번에는 점수 대신 이력서로, 상장 대신 경력으로, 태도 대신 성과로.

기준은 더 모호해졌는데, 증명의 압박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설명해야 할 것만 같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누구에게 증명하고 있는 걸까.


타인에게라고 말하기엔, 정작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다.

사회라고 하기엔, 사회는 개인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하나다.

우리는 어쩌면 과거의 나에게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더 나아질 거라고 믿던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고 보여주기 위해.


그래서 멈추지 못한다.

이미 충분히 해냈다는 순간에도,

조금만 쉬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에도,

우리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

증명을 멈추는 순간,

지금까지의 시간이 전부 의미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까 봐.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삶은 원래 이해받아야 하는 것이지,

끝없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증명에 매달리는 이유는,

어쩌면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충분한지,

이 방향이 틀리지 않았는지,

여기까지 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는지.

확신이 없을수록 사람은 더 많은 증거를 모으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어딘가에선 계속 서류를 제출하고 있는 기분으로 산다.

보이지 않는 심사위원에게,

끝나지 않는 평가를 받으면서.


그런데 정말로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성취가 아니라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증명이 끝나는 순간

삶이 멈추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때부터

비로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조금씩 시작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계속 증명하려고 할까.


어쩌면 그 질문의 끝에는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조용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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