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만큼이 아니라 나로서 사는 법

by 생각하는감자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지.”


그 말은 늘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태도처럼 들린다.

너무 뒤처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리하지도 않는

적당한 위치를 지키겠다는 다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선택의 기준을

‘남들만큼’이라는 말 위에 올려놓는다.

연봉도, 속도도, 결혼의 시기도,

심지어는 행복의 모양까지.


처음엔 그것이 안전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면

적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속도로 걷고, 비슷한 시점에 멈추면

나만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남들만큼이라는 말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기준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남들만큼 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다.

뒤처진 것도 아닌데,

어딘가 계속 비어 있는 느낌.

분명 잘못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이 길이 정말 내 길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


어쩌면 우리는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가 아니라,

나로 살아 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갈까 봐

더 불안한 건지도 모른다.


남들만큼이라는 기준에는

한 가지 빠져 있는 것이 있다.

그 기준을 만든 사람은

결국 남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속도, 그들의 순서,

그들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삶.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할 수는 있어도,

자유롭기는 어렵다.


나로 산다는 건

대단히 특별한 선택을 의미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가거나,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훨씬 조용한 일일 것이다.


남들이 정한 질문 대신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을 묻는 것.

남들이 원하는 속도 대신

내가 버틸 수 있는 리듬으로 걷는 것.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양보다

내가 덜 불안한 방향을 고르는 것.


그 정도의 차이.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삶의 감각을 완전히 바꿔 놓기도 한다.


물론 나로 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유보다 먼저 막막함이 찾아온다.

비교할 대상도,

확인할 정답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남들만큼이라는 말로

조용히 돌아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남들처럼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처음으로 그 질문을

내가 나에게 던졌다는 사실이니까.


남들만큼이 아니라

나로서 산다는 건

어쩌면 더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조금 덜 흔들리며

지금의 자리에 서 있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누가 또 이렇게 물어볼 때가 올 것이다.


“요즘 잘 지내?”


그때 우리는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서툴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응.

나답게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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