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에서 문득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 있다.
휴대폰 화면엔 특별한 소식도 없고, 오늘 하루가 특별히 망가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스스로에게 미안해지는 기분.
그럴 때 우리는 대개 오늘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끝난 하루들을 떠올린다.
예를 들면 그런 장면이다.
해야 했던 말을 끝내 하지 못했던 밤,
잡았어야 할 기회를 애써 모른 척했던 순간,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해 버린 표정.
그 일들은 이미 지나갔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속에서는 아직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건
타인의 실수는 생각보다 쉽게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그땐 힘들었겠지.”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꽤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하지만 같은 문장을
나 자신에게 말하는 일은
유난히 어렵다.
왜일까.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심판해야
안전하다고 믿어 온 건지도 모른다.
충분히 반성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엄격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그 믿음은 한때 우리를 지켜 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끝나지 않는 재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시간이 지난 일들까지
계속 마음속 법정에 세워 둔다.
판사는 없고, 방청객도 없는데
나는 계속 피고석에 앉아 있다.
누구도 나를 벌주지 않는데
나만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그보다는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잘 선택했더라면,
조금만 덜 상처받았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
그 미안함이 오래 남아
용서 대신 후회로 머무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용서는 잘못을 없애 주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 더 가깝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알고 있는 것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지금보다 적었다.
그 조건 안에서
나는 나름대로 선택했고,
버텼고,
여기까지 왔다.
그 사실까지 부정해 버리면
지금의 나 역시
언젠가 또 용서받지 못할 존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용서는
대단한 결심보다
아주 평범한 문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 말 한마디가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를 붙잡아 두던
보이지 않는 매듭 하나쯤은
조용히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나를 쉽게 용서하지 못할까.
어쩌면 우리는
용서할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서해도 된다는 허락을
아직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조금만
나를 덜 미워해 보려 한다.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아도 좋고,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여기까지 온 나를
조금은 덜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어쩌면 용서는
그 정도의 거리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