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앨리스테어 크롤, 벤저민 요스코비츠가 공저한 '린 분석'에서 말한다.
"어쨌든 여러분은 제대로 된 결정적 증거도 없이 어떤 것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현실왜곡장은 창업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거짓말이 만들어낸 거품을 스스로 믿기 시작하면 더는 살아남을 수없다. 직감은 영감을 준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내내 직감에 귀 기울이고 이용할 필요가 있다. 직감은 중요하다. 단 직감을 테스트할 필요는 있다. 직감이 실험이라면 데이터는 증거다."
현실왜곡장이라는 마취 흥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내면은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품질관리학자인 에드워드 데밍은 말했다. "측정 가능하나 모든 것을 측정하라. 그리고 측정이 힘든 모든 것을 측정 가능하게 만들어라."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무조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기에는 가설이 없는 것이 된다. 가설이 없으니 당연히 측정도, 분석도 관심이 없다. 그냥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고객이 모일 것이라 생각하는 창업자들은 자신의 제품을 고객들이 좋아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니 무엇을 측정해야 할지 모르고 당연히 발전도 없다. 상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현실 세계의 틈새가 얼마나 좁은지 똑바로 직시하고 나아가라.
훌륭한 투자자는 창업자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짧은 몇 분의 시간 동안 요약된 이야기를 듣고도 자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제품 개발의 완료가 사업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필요를 찾아 진화하는 과정을 거친 제품의 완성은 스타트업 여정의 최종 목표 지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비즈니스 모델이란 가설과 검증이라는 좌표에 찍힌 점들을 연결한 선의 벡터(vector) 값으로 이루어진 방향성이다. 처음 가진 아이디어에 담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한 정략적인 결과가 그래프에 한점 두 점 찍힌다. 그로부터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그 결과는 정량적으로 산출되고 그래프에 점으로 기록된다. 이 점들을 연결하고 해석하면 하나의 일관된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장의 필요와 고객의 고통'이 점점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진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다. 스타트업의 설득력은 '고객의 문제가 무엇인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에 있다. 질문은 가설이다. 하지만 가설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소설가나 몽상가다. 창업가는 가설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그 가설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스타트업의 투자자에게 보여줄 첫째 목표는 '내가 제품을 만들 능력이 있다'가 아니라 '내 사업 가설이 동작한다'이어야 한다.
창업을 하기로 먼저 결정해 놓고 그다음에 무엇을 할까 아이템을 고민하거나, 아이템과 기술을 먼저 결정해 놓고 고객을 역으로 끼워 맞춘 사업 계획서는 표시가 난다. 트렌드를 좇는 창업자들이 잘 빠지는 대표적인 함정이다. 사업 계획서는 억지 논리로 채워지고 설득과 논쟁을 가설 검증의 도구처럼 쓴다. 정작 가치의 짝인 고객의 문제점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드물다. 제품에 내포된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과 고객의 필요와 문제점은 항상 짝을 이룬다. 이를 '제품-시장 궁합(product-market fit)'이라 부른다. 제품과 시장의 필요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 제품-시장 궁합이 천생연분인 좋은 가설은 설득도 필요 없다. 여러 측면에서 검증하면서 사람들에게서 '와우!' 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면 미련 없이 버려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자연법칙이다. 사업은 쉽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 거기에 배를 띄우면 된다. 노를 젓지 않아도, 엔진을 달지 않아도 배는 전진한다. 중요한 원리일수록 쉽고 간단하고 다 아는 뻔한 이야기이다. 제품-시장 궁합이 천생연분인 좋은 가설은 설득도 필요 없고 사업은 저절로 동작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흐르는 물줄기이다. 사업이 힘들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성공을 만드는 진정한 힘은 고객가치의 물 흐름이다. 물 흐름은 고객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 사이의 이동이다. 고객의 불편, 고통과 편리함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다. 비용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사이의 낙차다. 더 빠르거나 더 느린 것과 같은 시간의 차이다. 이들 격차로 인해 물이 흐른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은 비싼 것을 더 싸게 만들거나, 소비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만들면 물은 저절로 흐른다는 말이다. 그 위에 띄운 사업이라는 배가 움직인다. 고객은 스스로 돈을 내고 해결책, 즉 가치를 산다.
스타트업 사업은 낙차 차이를 흐르는 물줄기를 찾거나 진공 상태인 방을 찾는 탐색 활동이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거나 능력을 입증하는 초인적인 활동과는 다르다.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만드는 것만이 사업의 목표라고 생각하며 끈질기게 탐색하는 창업가가 바로 흐르는 물줄기를 찾는다. 고객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기존의 해결책보다 좋은 해결책을 제시하면 사업은 순항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다. 사업은 쉽다. 흐르는 강물에 배를 띄워라.
스타트업은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을 준비하는 활동을 한다. '사업'과 '사업의 준비'는 완전히 다른 활동이고 다른 결과를 목표로 한다. 스타트업은 '나'혹은 '조직'이 발을 디딜 단단한 땅 한 뼘이 없다. 그 말은 함 뼘은 오로지 고객과 시장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나로부터 출발해서는 안된다. 내 생각이 중요하지 않다. 내 계획과 바람 위에 올라서지 않는다. 스타트업은 그 땅 한 뼘을 찾는 일이 주된 업무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에게 적합한 용어는 '계획' 혹은 '기획'이 아니라 '탐색'이다. 접근 방법도 '문서 작성'보다는 '가설 검증'이 더 적합하다. 문밖으로 나가서 잠재 고객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잠재 고객의 생각을 확인하는 활동을 통해 얻은 숫자와 배움에서 누적된 지혜가 더 중요하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의 '해법 공식'을 확보해야 한다. 고객에게 가치를 반복적으로 제공하면서 규모를 만들 수 있는 해법 공식을 깨닫는 것은 바로 내 사업의 '천기'를 얻는 것이다. 많은 초기 기업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의 피칭을 자료 없이 일상적인 말로 직접 듣고 싶어 한다. 피칭덱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무엇을 왜 하려고 하는지'설명해야 한다. 거기에는 고객의 시장과 필요와 문제 그리고 해결책이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업의 가설이다. 이 가설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믿음직한 초기 창업자들은 자신의 가설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어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창업팀은 누구이고 이 일을 왜 잘할 수 있을지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본 유치가 필요하다면 이를 분명히 명시하라. 가능하면 기업 가치에 얼마의 금액을 투자 유치 중이라고 공개해도 좋다. 그 돈을 어떻게 쓰고 그것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설명할 수 있으면 좋다. 무엇보다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로 만들면 금상첨화다.
기존에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해 보면 많은 경우 기존에 있는 제대로 된 것을 '제대로'조사하지 못했거나, 개인적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제대로'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이다. '제대로'라는 말은 실체가 모호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창업자이건 그 우물에 한두 번 갇히긴 하지만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이 그 우물을 벗어나는 창업자들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상식과 관점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눈과 능력은 본능을 거스르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단기적으로 수억 원의 자본 투자를 받은 것과 같은 가치의 능력이다. 장기적으로는 변화하는 미지의 미래를 해치고 나갈 중요한 조종간을 소유한 자이다.
창업자들은 머릿속에 있는 경험, 문제의식, 가치관 그리고 고객과 시장에 대한 상상력을 조합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글과 말로 표현해 전달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훈련이 부족하면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어와 표현에 스스로 잘 속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형용사의 사용이다. 형용사로 묘사하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지 '동사'로 말하라. 형용사를 자주 쓰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한 것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또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인다. 부사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업계획서에 자주 사용되는 형용사 또는 부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효율적인, 열심히, 합리적인, 혁신적인, 더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고객이 만족하는, 신뢰할만한, 가치 있는, 최적화된, 의미 있는, 전문적인, 우수한, 효과적인, 싸고 좋은, 실질적인, 차별화된 , 뛰어난, 창의적인, 더 좋은, 열정적인, 제대로 된, 쉽고 편한, 맞춤형인, 취향에 맞는' 등이다.
이런 형용사들은 창업가들의 글과 입이 아니라 고객의 입에서 나올 때만 진정한 가치가 살아난다. 사업계획서에서 형용사를 다 제거하고 다시 읽어보자. 핵심 뼈대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