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창업하면서 개인 사업자로 등록할지, 법인 사업자로 등록할지 고민한다. 나는 제3의 선택, 즉 '무사업자'를 추천한다. 사업자 등록이 사업의 시작은 아니다. 가능하면 가볍고 부담 없는 상태를 전략적으로 유지하며 쉽게 실패하고, 쉽게 흩어지고, 쉽게 다시 모일 수 있는 게릴라가 되어야 한다. 사업자 등록은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되고 공동 창업자와 더 이상 헤어질 수 없고, 제법 큰 매출이 생겨서 세금 계산서를 직접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나 외부 투자를 받게 된 맨 마지막에 할 것을 권한다.
법인 사업자로 등록하면 법적 의무 사항들이 여럿 생긴다. 기본적으로 법적인 기준을 충족한 회계 기장을 해야 한다. 다른 회사와 거래할 때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거나 받을 때 관련된 증빙서류도 챙겨야 한다. 급여를 지급할 때 적합한 세금을 미리 떼어서 적립했다가 세금 신고 때 각각 개인 이름으로 세금 신고도 하고 납부도 해야 한다. 만일 직접 처리해 본다면 사업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하가 걸린다고 불평할 창업자도 많이 나올 것이다. 법인을 청산하지 않은 채 그냥 두면 국세청에 기록이 남는다. 청산 과정은 사업등록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법인과 관련된 지켜야 할 사항들 중에는 단지 세금이나 돈 문제뿐 아니라 형사적인 문제가 되는 사안들도 많다.
스타트업은 멤버들끼리 의리를 지켜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경우가 많다. 의리도 좋지만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사람이 모여 팀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른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운전기사와의 의리를 생각하며 종점까지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흩어지고, 빨리 다시 모이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다. 지속가능함이 확인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터를 잡는 것은 디지털 유목민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이지만, 사업이 잘 안 되면 모든 게 다 괜찮다. 공동 창업자들은 더 친밀해진다.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거나 잘될 것 같은 징조만 보여도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서로 간에 하는 말이 달라진다.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의 해석이 달라진다. 사업을 시작하는 공동 창업자들이 '우리는 의리가 있어서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말 두고 볼일이다. 공동 창업의 경우 시작 시점에서 반드시 주주 간 계약 혹은 공동 창업자 간 계약을 맺어야 한다. 공동 창업자 간에 협의하고 명시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동 창업자 각각의 역할과 지분 : 회사의 구조와 운영에 대한 철학을 따라 다양한 조직 구조와 역할을 나눌 수 있다. CEO가 절대적인 지분을 소유할 것인지 아니면 공동 창업자들이 서로 비슷한 지분을 나눠 가질 것인지, 누가 대표이사(CEO) 역할을 할 것인지, 공동대표 혹은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할 것인지 등등을 토론하고 결정해 기입한다.
2. 공동 창업자 각각의 의무사항, 근무기간, 전임근무, 파트타임 근무 여부와 기간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무 기간이다. 특히 근무 기간을 지키지 않고 회사를 떠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정해야 한다. 공동 창업자들의 근무 기간은 가능하면 길게 잡는 것(최소 5~10년)이 회사를 위해 좋다. 근무했던 기간이 일정 기간을 넘었으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일정 부분의 주식을 소유하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두기도 한다.
3. 소유 주식의 매매 제한, 위반 시 반환 조건과 절차 : 여러 사람이 공동 창업을 하는 경우 회사의 주식이 공동 창업자들에게 분산된다. 공동 창업자들의 주식을 외부에 매각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우선 매수권(특정 주주가 주식을 제삼자에게 매각하려고 할 때 그보다 먼저 그 주식을 같은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거나, 공동 매도권(특정 주주가 주식을 제삼자에게 매각하려고 할 때 동일한 조건으로 같이 매각할 수 있는 권리)등을 명시하는 방법이 있다.
4. 최종 의사 결정 방법 : 특별히 정하지 않아도 회사의 최종 의사 결정에 실무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있고, 그 위에 이사회가 결정 권한을 가진다. 그 위에는 주주총회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도 있다. 상법 명시되어 따라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예외적인 사항이 꼭 필요하다면 주주 간 협약에 추가하면 된다.
5. 경업(競業) 금지 : 대립하는 공동 창업자들이 회사 정보를 가지고 경쟁회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서로 동의하면 일정 기간 동안은 같은 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서로 서약할 수 있다.
6. 계약의 종료시점 : 계약의 종료시점이나 혹은 종료 조건을 명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계약이 된다.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살아남는 조항을 예외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협상과 계약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문장과 단어 심지어 구두점의 위치에 따라 피할 수 없는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 중요하고도 엄중한 행위이므로 쉽게 생각하지 마라. 나는 스타트업을 도와 멘토링을 할 때 어떤 계약서이건 도장을 찍기 전에 반드시 멘토와 전문가의 자문을 받으라도 조언한다. 모든 계약서는 변호사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모든 계약에는 두 가지 내용이 들어가는데 하나는 사업적 내용 다른 하나는 법적인 내용이다. 투자를 받는 경우 기업 가치를 얼마로 하는 것이 적절한지, 창업가의 매각 금지를 몇 년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 납품 계약에서 무상 유지보수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몇 시간의 기술 지원을 보장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사업적인 결정사항은 변호사 자문의 범위 밖 내용이다. 협상과 계약에는 반드시 비즈니스적 결정 사항과 법률적 요건 두 가지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하나는 변호사 또 다른 하나는 그 분야의 경험이 있는 멘토의 도움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대기업과 인수 합병을 하는 스타트업을 도울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마치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게임을 하는 것 같이 협상 상대가 안 되는 것을 발견한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마음이 조급하고 꼭 성사시키고만 싶어 노심초사하는 창업자들의 심장은 도와주는 조언을 감당하지 못한다.
모든 협상 준비에 있어서 첫째로 큰 힘은 '안 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다. 이 협상을 꼭 해야만 하거나, 꼭 하고 싶은 상태에서 협상에 들어가면 백전백패일 뿐 아니라 원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협상 준비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준비는 이번 협상이 안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안'은 협상을 깨트리고 다른 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안이 단단할수록 이번 협상을 성사시키도록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협상준비의 세 번째 요소는 '딜 브레이크(deal break)' 조건을 확정하는 것이다. 제휴 혹은 투자 유치를 정말 하고 싶다 하더라도 특정한 조건을 얻지 못하면 제휴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경우가 있다. 가격의 상한선 혹은 하한선, 영업권의 보장이나 기간, 판매하는 제품의 브랜드 혹은 저작권 등등의 다양한 조건이 있다. 경영자의 철학이나 회사의 전략적 방향에 결정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들이 바로 딜 브레이크 조건이다.
협상을 영업의 연장선으로 오해한다. 협상과 계약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거짓말이 '표준 계약서'다. 세상에 수정하지 못하는 '표준 계약서'란 없다. 다만 '누가 얼마나 아쉬운지' 그리고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라는 두 가지 변수로 이루어진 협상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