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 기업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태워버릴 수 있는 화염발사기가 아니라 성냥의 작은 불씨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하려는 일이 얼마나 방대한지 모른다면 아직 사업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태다. 사업의 전정기관인 현실감각이 개발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사업 시장과 고객을 분석해서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나누고, 그 하나의 점이 될 문제에 집중한 날카로운 솔루션을 만들어라. 경영학 용어로 이를 '시장세분화'라고 한다.
세상에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이 모든 것이 양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런 특징을 응용하면 된다. 선두 업체가 낮은 가격의 보급형 제품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나? 그러면 높은 가격의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거기에 잠재 시장이 존재한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의 욕구의 빈틈을 찾아라.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때 자신이 디딜 땅 한 뼘이 어디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스타트업들은 어쨌거나 작게 유지하라. 날카로워라. 작으면 절대 안 망한다. 작을수록 날카롭다. 날카로우면 큰 놈을 이긴다. 그리고 하나만 집중하라. 한놈만 패라! 깐 데 또 까라. 그러면 승리한다.
스타트업 마케팅을 슬로모션으로 한번 살펴보자. 첫 단계는 '노출'이다. 노출해야 고객이 인지할 수 있다. '노출' 없이는 고객에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고객의 '관심'이다. 노출된 제품, 사실 '가치 제안'이라는 낚시 대부분은 무시된다. 어쩌다 낚시성 멘트 혹은 관심 키워드 때문에 노출에서 눈에 띄는 단계, 즉 관심을 가지는 단계로 진입한다. 좋은 키워드, 호기심 가는 카피, 고객의 필요를 정곡으로 찌르는 표현, 현실감 있는 이미지, 동영상 등이 도움을 준다. 세 번째 단계는 고객의 '반응'인데, 웹이나 모바일에서는 '클릭' 혹은 '터치' 혹은 '좋아요' 등이 해당된다. 사이트 방문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사이트를 처음 방문한 고객은 5초 이내에 머무를 것인지, 나갈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5초 이내에 읽고 인지할 수 있는 글자수를 계산해 보라. 홈페이지의 첫 페이지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중요한 가이드라인이다.
마지막은 고객의 '행동을 유발'하는 단계이다. 홈페이지에 방문한 잠재 고객에게 회원 가입이나 이메일 주소를 남겨달라고 요청하며 구애해야 한다. 그 고객은 이메일 주소를 남기면 스팸 메일 폭탄을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두려움을 뛰어넘어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노출 - 관심 - 반응 - 행동 - 유발에 이르는 통로(pipeline)를 설계해 만들고 관찰하고 또 관찰하라. 끊임없이 수정하며 관찰하라.
모닥불 불길이 새 불길을 만들 듯이, 한번 확보된 고객이 유지되고 유지된 고객이 새 고객을 만드는 자연 성장을 이루게 하는 것이 마케팅의 목표다. 실리콘벨리에서 2006년 우푸(Wufoo)라는 회사를 창업해 5년 조금 넘은 시점에 회사를 매각하여 백만장자가 되고 와이 콤비네이터의 파트너가 된 케빈 헤일(Kevin Hale)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의 스타트업 철학은 1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맨 첫 고객의 첫 매출 1달러를 벌게 만드는 핵심 가치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가치만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외의 모든 것들은 자동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첫 고객에게 첫 번째 돈을 받을 만한 가치를 만드는 것이 100만 명의 회원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스타트업 마케팅의 온탕에 빠지지 말라. 사업은 장거리 경기다. 차근차근 만들자. 지금 내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고객부터 만족시키고 그 주변에 있는 고객의 반응을 보면서 진화해 나가야 한다.
많은 분식점 주인들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후에도 자신의 김치볶음밥이 무엇이 문제인지 여전히 모른다. 그리고 이 정도면 괜찮은 김치볶음밥이라고 주장한다. 스타트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디자인이나 기능이나 홍보, 이벤트의 부족, 제품의 기능이 미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래서 엉뚱한 일을 열심히 한다. 디자인과 기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CEO의 관심, 즉 사랑과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면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 CEO들은 자기 제품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데, 파워 고객만큼이나 자기 제품을 관심을 가지고 써보면서 잘 아는 CEO가 있다면 그 회사는 성공할 것이다. 다만, 제품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고객의 행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업은 이웃을 돕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웃을 도우려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성장과 효율을 추구하는 경영과 고객 만족 경영의 대결 구도에서 고객 만족 경영이 이기는 현상이 바로 오늘날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을 이기는 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희귀한 메시지는 바로 진정성을 함유한 사랑과 정성이라는 것을 모든 창업가가 알면 좋겠다. 사업은 사회와 고객에 대한 진실된 봉사다.
회사들 가운데 자신의 본업과 고객에는 정작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조직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해볼 것은 다 해봐서 더 할 것은 없다고 단정한다.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은 경쟁이나 시장이나 거시적인 경제 침체가 원인이 아니라 바로 그 회사 조직들의 고객에 대한 무관심과 패배주의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모든 것은 고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브랜드'도 자신이 만든 예쁜 디자인이나 로고, 캐릭터 혹은 멋진 이름이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고민한 결과물이어야 한다.
좋은 창업가는 고객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구분해 각각을 개별적으로 대하는데, 그저 그런 창업가는 고객을 집단으로 본다. CEO가 주기적으로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그 회사의 고객 사랑은 관념적인 아름다운 모습이나 통계와 전략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사업의 지표를 측정하는가? 잘하고 있다. 통계 외에 변동치까지 관리하는가? 정말 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어제 방문했던 그녀가 오늘은 왜 안 왔을까?'라는 질문이 그런 지표와 통계 속에 묻혀서 잊힌다면 차라리 지표는 버리고 그녀에게 직접 전화하라. 이게 진짜 마케팅이다. 고객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는 CEO가 고객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