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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by 최성아

1. 돈의 힘으로 일하려 하지 마라


돈이 많아지면 잘 나가던 벤처들도 방향을 잃기 쉽다. 사업이 잘 안 되는 이유가 각종 기능이 부족해서라고 믿는 CEO는 돈이 생기면 직원을 뽑고 기능 확장에 집중한다. 기능이 많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에서 강해져야 하는데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제품 - 시장 궁합(product-market fit) 공식을 알기 전에 기능을 확장하면 고객의 행동을 측정하고 이해하는데 제곱으로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데 있다.


경력직원을 채용하면 창업자는 소위 '시스템으로 일한다'는 사치와 게으름에 빠지고 대외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밖으로 다니는 것을 즐기게 된다. 고객을 만나는 일이 모든 회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중간관리자가 많아지면 회사가 추진하는 일도 암묵적으로 서로 미루면서 믿고 관망하는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실행이 느려진다. CEO들은 스스로 아이디어가 많다고 자주 자랑하는데, 그 말은 돈만 많으면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이 많다는 말이다. 대기업이 돈으로 시장을 왜곡한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스타트업들도 돈만 많으면 공격적으로 마케팅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둘 다 똑같은 약탈 자본주의의 신념이다.


스타트업의 창업 초기에는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돈을 투자받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에게는 단계별로 걸맞은 돈의 규모라는 것이 있다. 투자 역시 단계를 밟아가면서 엑셀러레이팅 투자, 시리즈 A 투자, 시리즈 B 투자 등의 과정과 거기에 따른 기업 가치에 맞게 투자를 받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돈이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돈이 스타트업에게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2. 대기업에 기대지 마라


사기 범죄는 대체로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마음과 욕심으로 사기꾼의 술수에 스스로를 빠트리면서 발생한다. 스타트업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대기업으로부터 무슨 큰 비즈니스 기회를 쉽게 얻고자 하는 기대감을 가지면 그때부터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대기업 담당자가 투자, 제휴, 공동사업, 전략적 관계, 그룹 전체 구매 같은 용어를 쓰면서 이야기를 하면 '나쁜 냄새가 나는데?'라고 먼저 생각하라. 대기업 담당자의 말을 그 대기업 '회장'의 약속처럼 듣고 김칫국을 마시지 마라. 위임 전결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나 이번에는 싸게 일하고 다음번에 더 큰 비즈니스를 약속한다는 말에도 속지 마라. 그 대기업의 담당자가 속한 조직이 사회 공헌 조직이 아닌 한 손해 보면서까지 비즈니스 관계에서 스타트업을 도와주거나 이익을 줄 권한을 가진 대기업 담당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대기업에도 없다. 스타트업 기술과 인력을 공짜로 혹은 싸게 이용하기 위한 교묘한 말일뿐이다. 아쉬운 점은 많은 스타트업 창업 팀들이 지름길로 가면서 사업을 쉽게 하려는 생각 때문에 비슷한 함정에 반복해서 빠진다는 사실이다.


대기업과의 경쟁 때문에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보다 대기업과 협력하다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 스타트업은 경쟁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조금만 성장해도 경쟁이라는 관문이 반드시 등장하고, 그 경쟁의 관문을 통과해야 성공의 문이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거쳐야 하는 문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이기 때문에 잘될 이유가 열 가지가 있다면 대기업이기 때문에 안될 이유도 스무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몸집이 크다고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크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는 자가 이긴다.



3. 돈을 버는 것에서 출발하라


회사가 직접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로 매출을 내지 못한다면, 용역이라는 상품을 통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 용역을 하되 의미를 잘 알고 하자. 용역의 첫째 목표는 '돈'이다. 용역 발주 회사와 좋은 관계를 맺어두면 나중에 추가적인 용역을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나, 이번에는 싸게 하고 다음 용역에서 보상한다는 말, 향후에 그룹 전체에 확산한다는 말, 장기적인 계약 같은 이야기에 속아서 이번 프로젝트 단가를 그런 기대감과 맞바꾸지 마라. 즉 이번 프로젝트 단가를 양보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스타트업 비전이 다음번에 더 높은 가격의 용역을 다시 '수주'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음번에 더 높은 가격의 용역을 '거절'하는 것인가? 용역은 '단기적인 현금 확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6개월 열심히 용역으로 돈을 벌어, 1년 동안 회사의 제품, 서비스 개발과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다.


용역의 둘째 목표는 '경험과 전문성'이다. 가능하면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와 연관된 분야의 용역을 하라. 관련된 분야의 용역을 하면 기술 유출을 걱정하는데 용역 후 소스코드를 다 줘도 괜찮다. 대기업이 그것 가지고 경쟁자가 될 수 있으면 용역을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타트업은 핵심 기술, 아이디어는 있어도 오히려 시장 경험이 부족하다. 용역 발주처의 깐깐한 요구사항을 분석하는 과정과 프로그램 개발 과정과 유지보수 과정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기능과 성능의 향상을 경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용역도 '기업 간 거래(B2B)' 비즈니스의 한 분야다. 전문성을 가진다면 이 분야의 사업도 대박은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좋은 사업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용역의 기회를 십분 활용하라.



4. 초심을 잃어버리지 마라


앞서 용역의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권했지만 용역의 끝이 좋지 않은 회사들이 참 많다. 용역의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잘하는 회사의 경우, 일감이 점점 많아지고 높은 단가를 받아 용역으로 쉽게 큰돈으로 벌게 되면서 안주하려는 유혹도 받는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더 큰 용역을 수주하거나 매출을 늘리기 위해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고, 또 이미 늘어나 있는 직원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더 큰 용역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간다. 조직과 일의 목적이 이웃이나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 혹은 조직 자체의 존립으로 전환된 조직의 뼈대는 녹이 슬기 시작한다.


직원을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말도 안 되는 높은 단가를 불러라 혹시 말도 안 되는 높은 단가로도 용역 수주가 된다면 본업을 잠시 중단하고 외도해 총알을 든든히 채우고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돈맛에 취해 탈영하지 말고 반드시 원대 복귀하라.



5. 투자와 부채는 빚이다


모든 사업의 초점을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즉시 투자받는 것에 맞춘 위험한 도박을 하는 스타트업이 의외로 많다. 스타트업에게 투자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투자는 구걸이 아니다. 남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회사를 운영할 의지나 자신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 요청은 투자자들의 자본을 다른 데서 운영하는 것(예를 들면 은행 예금) 보다 더 높은 복리 수익으로 돌려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투자를 통해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둘째, 투자는 권리도 아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서비스와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투신하더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투자는 나의 권리가 아니다. 투자자의 권리다. 셋째, 투자는 필수가 아니라 옵션이다. 사업의 기본은 '제품을 판매해 얻은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다. 투자금으로 급여를 주거나,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은 덤이다. 넷째, 투자는 빚이다. 투자 역시 이자를 붙여서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돈이다. 이론적으로는 자본 투자는 부채가 아니다. 갚을 법적인 의무는 없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다른 채권자들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으로 여겨야 한다. 투자자는 채권자보다 창업자를 더 믿어주면서 부채 상환권이라는 안전장치를 포기하고 돈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만나면 반드시 부채 여부를 묻는다. 다수의 창업가들이 성급하게 과도한 빚을 내서 다 써버렸는데 매출은 없어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해지자 투자자의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업 계획이 너무나 확신되는가? 주변에서 좋다고 칭찬만 하는가? 그러나 그런 생각만 믿고 빚이라는 늪으로 풍덩 뛰어들지 마라. 자기 자금이 있어야 '사업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 사업가들에게 분명하고도 단호한 임계점을 정해놓고 부채를 결정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특히 초기 창업가들의 경우 부채의 기준은 현금 흐름의 간극을 메우는 수준이거나 혹은 창업가가 다시 취직해서 1~2년 동안 급여를 받아 갚을 수 있는 수준을 넘지 말아야 한다. 빚이 한계를 넘으면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가기 때문이다.

혹시 부채를 고려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아니라 다 쓴 후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스타트업에게 부채란 사업을 도박으로 전환시키는 촉매제라는 점을 잊지 마라.



6. 비전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만들어내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스타트업이 할 일이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은 CEO의 '과도한 열정'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손익분기 달성 목표가 1년이라면 실제로는 3~4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자금 절반은 인출 불가능한 곳에 묻어버리고 절반만 가지고 첫 번째 도전하기를 권한다. 처음 사용하는 절반은 대부분 수업료다. 첫 번째 도전을 시범 경기로 생각해야지 마지막 결승전처럼 덤비지 않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매출이 없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돈 벌 일을 찾는 것이다. 둘째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고, 이는 인원을 줄이는 일도 포함된다. 셋째는 본업에서 획기적인 지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세 번째까지 완성이 되면 마지막으로 투자자를 접촉할 때가 된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은 이 순서의 반대로 실행한다. 비전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스타트업에서 의사 결정할 때 항상 고려해야 하는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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