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 ' 커리어 전환, 그 필요성과 난해함'
오늘날 저마다의 커리어 단계를 밟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을 얼마나 하고 싶고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하고는 한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삶이 배움에 전념하는 짧은 초기 단계, 일에 몰두하는 긴 중기 단계, 황금기를 즐기는 후기 단계 등 '전통적인'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업과 커리어를 바꾸고 교육의 기회를 좇으며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시간을 만드는 등의 과정을 점점 더 자주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특정 나이에 불거졌다가 단번에 해결되는 '중년의 위기'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더욱 빨라진 기술변화 속도와 근래 등장한 AI는 끊임없는 커리어 재창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직업과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커리어 전환에는 이롭고 필요한 부분도 많지만 아무리 자주 직업을 바꾸더라도 혼란, 상실감, 불안, 마음고생 등 감정적으로 힘든 과정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커리어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커리어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제도적 지원 부족'과 '직업 정체성의 불안정한 상실'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1) 제도적 지원 부족
최근까지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이동은 대부분 획일화돼 있었다. 조직과 조직을 감독하는 전문가들이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의사가 되고 싶거나 로펌의 파트너가 되고 싶거나 경영진으로 승진하고 싶으면 명확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학창 시절부터 은퇴시기까지 각단계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오늘날 선형적이지 않은 커리어 경로가 증가하면서 많은 커리어 전환이 '덜 획일화된'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변화를 위한 일련의 변하지 않는 단계는 없으며 변화에 걸리는 시간이나 진행 상황을 측정할 방법도 모른다. 커리어 이동이 채용과 고용 프로세스가 체계화된 대기업에서 체계 없는 인력시장의 소규모 기업, 사기업, 창업 기회 쪽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풀타임으로 일하던 사람들이 유동적이고 개별화한 임시직, 파트타임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2) 직업 정체성 상실
수십 년에 걸친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소속돼 있고 우리를 인정해 주는 뚜렷이 정의된 집단과 조직에 기반을 둔다. 전통적인 고용주의 보호자 지원, 안정된 직업 정체성이 없으면 우리는 이내 공허함, 불안함, 소외감, 불안정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 이직을 택하는 대신 직장에서 해고됐다면 이런 감정은 크게 증폭될 수 있다. 감정 기복은 모든 변화의 기본 특성이다. 안타깝게도 여러 이유로 인해 예상보다 오래 이러한 감정 기복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흔히 인생이 걸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먼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성찰이라는 힘든 작업이 끝나면 나머지는 실행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접근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마다 나는 똑같은 현상을 목격해 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거나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우선 더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실직해서 어쩔 수 없이 변화를 꾀해야 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시작을 미룬다.
이런 타성을 인간의 심리 탓으로 돌리기 쉽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미성숙하며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본성을 성찰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 연구는 다른 결론으로 이어졌다. 보통 변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단지 시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방법에 있는 셈이다.
커리어 전환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모든 일을 미리 정할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고 조정해야 한다.
새로운 커리어를 찾는데 선택성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되지만 감정적으로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경계상태(luminal state)'에 놓이기 때문이다. 경계 상태에서는 깨끗이 끝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잘 닦인 길에서 명확한 목표를 좇는데만 익숙한 사람은 경계성이 특히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커리어를 전환할 때 경계성은 기존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필요한 시공간을 제공한다. 과거의 자신에 전념하는 것을 멈추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에 보다 더 창의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정체성 작전타임이라고 생각하자.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찾아내고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 모를 습관과 관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무대에 충분한 기술경험과 인맥을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서둘러 다음 일자리를 잡으려 애쓰는 대신 경계성을 끌어안아야 한다.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내 연구에 따르면 이 과정을 더 쉽게 만드는 3가지 중요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분산과 지연
다음 일자리를 찾기까지는 보통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기존의 계획-실행 프로그램으로는 거의 같은 결과만 얻기 십상이다. 경계 상태에서 진정으로 뭔가 발견하길 바란다면 다양한 가능성 중 어느 하나에 전념하는 것을 미루며 여러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 그러면서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본인과 본인의 선택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다.
2) 활용과 개척
인간은 기존의 기술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분야로 전환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꽤 능숙하다. 하지만 커리어를 전환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처음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새로운 일에 성공할 수 있을 때까지 종전 직장과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부업을 활용하고 개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브리징과 본딩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또는 관계를 통해 직업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커리어를 전환할 때는 쌓아온 인맥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현재의 사회적 관계망 너머로 관계를 확장하거나 다시 활동화하는 브리징(Bridging)과 가까운 동류 집단 안에서 유대를 강화하고 커뮤니티를 찾는 본딩(bonding), 이 두 가지 방식으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브리징은 구직 네트워킹의 황금률이 잘 모르거나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약한 유대관계를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기회를 찾을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최근 2000만 명이 넘는 링크트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가 이 사실을 입증한다. 약한 유대관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적 관계망에 연결해 주기 때문에 구직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식으로 확장된 네트워크에 손을 뻗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노출되고 취약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과 행복,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본딩이 커리어 전환기에 있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 관계가 전환기의 불안정한 감정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지지, 생계 수단, 공간을 제공한다. 본딩을 형성하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관계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특히 배우자)과 맺을 때도 있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이나 전환기에 있는 다른 사람, 열망하는 분야에 이미 몸담은 사람과 맺을 때도 있다.
커리어 전환기에 서 있는 것은 직장생활의 플롯을 잃는 것과 같다. 새로운 이야기의 가닥을 잡기 위해서는 분산과 지연, 활용과 개척, 브리징과 본딩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주면서 쌓아온 경험을 이해시키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내가 '큰소리로 자아성찰하기 (self-reflecting out loud)'라고 부르는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은 적잖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질문하고 허세를 간파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당신의 생각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재창조가 일상이 되면서 당신을 정의하는 이야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졌다. 종결 대신 얻는 것은 배움이다. 지위와 정체성 상실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선택권을 갖게 해 줄 것이다. 경계기를 보내는데 익숙해지더라도 당신 앞에 놓은 거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대 커리어의 특징인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것이다.
아티클 원문 : https://www.hbrkorea.com/article/view/atype/ma/category_id/6_1/article_no/2096/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