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찬 삼성전자 디자이너 이야기'
제품 디자인에는 원형이 존재합니다. 카메라는 렌즈, 버튼, 뷰파인더의 배치가 익숙하고 냉장고라면 문을 열고 식재료를 보관하는 수직 구조가 떠오르죠. 이미 있는 형태에서 출발하면 혁신하기가 힘듭니다. 사용자의 경험에서 출발해서 기존의 제품을 해체하는 게 먼저예요. '경험 중심으로 제품을 해체한다.' 함께 일하던 페데리코 카살리노 부사장께 배운 겁니다.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지셨어요. "카메라를 왜 카메라처럼 디자인해?" 중요한 건 사진을 실제로 찍는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겁니다. 익숙한 제품의 형태가 아니라, 경험에서 출발하면 완전히 다른 형태가 나올 수 있어요.
고정관념을 깨는 것, 기존의 정답을 해체하는 게 선행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슬라죠. 자동차 안에서의 경험은 크게 바뀌었는데, 엔진룸과 기어 중심의 레이아웃은 100년 동안 바뀌지 않았어요. 대신 테슬라는 커다란 터치 디스플레이를 깔았습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소비자를 위해 새로운 형태를 내놓은 거죠. 당시 기억으로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이 한 디자인, 불편하고 위험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실제로 써본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어요. 지금은 터치형 디스 플레이가 보편화됐습니다.
일을 분리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 거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품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시각 디자이너, 개발자, 상품 기획자 등 각자가 분야가 확실히 나뉘었는데, 이제는 일이 겹쳐지는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필요하다면 디자이너가 바이브 코딩으로 솔루션을 만들고, 팀원을 설득해야 한다면 AI로 리서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디자이너가 '정체성'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내가 해결하고 싶은 과업'에 집중해야 할 겁니다.
새로운 앱을 디자인해야 한다면, 바이브 코딩한 프로토타입으로 콘셉트를 설명하는 식이에요. "코딩은 디자이너의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AI툴로 자신의 의도를 더욱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학계에서도 변화가 보이는데, 얼마 전 1회 졸업생을 배출한 국민대학교 AI디자인학과에서는 AI를 툴이 아닌 '디자인 언어'라고 가르쳐요. AI와 소통하면서 개발 경험이 없는 학생들도 손쉽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더군요.
기계자동차공학을 전공했던 고성찬 디자이너는 당연히 삼성전자 R&D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수가 끝난 뒤 삼성 디자인경영센터로 배치받았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다이슨'의 사례를 들며 당시 다이슨이 디자이너가 아닌 공학도에게 디자인을 맡겨서 다양한 혁신 제품들을 출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처음으로 디자인을 배웠는데 당연히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고, 당장 스케치도 잘하지 못해 고민을 하다 약점을 숨기기보단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케치에 집착하지 말고 3D 모델링 툴을 익히면서 모델링 전문가가 되면 디자이너로서 몫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프로젝트에 필요하면 새로운 툴을 빠르게 익히고 2022년 CES 발표 때는 제품디자이너였지만 AI캐릭터를 디자인하라는 지시에도 잘 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전공자도 아니고 제대로 할 수없다는 약점에 집중했다면 고성찬 디자이너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내가 해보지 않았기에 난 해낼 수 없어, 혹은 내 직무가 아니기에 할 수 없어라고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AI로 인해 거의 모든 직군에서 해낼 수 있는 업무가 증가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업무 영역이 재편되며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을 기획자가 되어 알아야 하는 순간이 됐습니다. 때문에 이것만 하겠다는 선, 저것만 해야 한다는 선을 넘는 사람만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13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