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철 PwC컨설팅 전략본부 이사'이야기
저는 어린 시절 시골 유지의 아들로 자랐어요. 시골 마을이지만 동네에는 아버지의 공장건물이 있었고, 친구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정글짐에 올라 놀면서 "저기가 규철이 아버지 회사야"라며 추켜 세워주고는 했어요. 그런던 아버지의 사업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났습니다. 이후 안정을 되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늘 친구들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많은 것이 관심이 있었고, 재밌게 말하는 재주를 타고났어요. 그 재주를 활용해 낯선 환경에서도 금세 친구를 사귀고 무리의 중심을 꿰찼습니다. 뭐든지 알고, 아는 걸 재밌게 잘 설명하고, 그래서 가까이하고 싶은 친구. 그게 제 추구미였어요. 그런 경험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어느샌가 스스로를 '유능해서 유용한, 모든 걸 알려주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천직과도 같았습니다. 컨설턴트는 기업인이 풀 수 없는 문제, 오랫동안 붙들어온 고민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컨설턴트란 아는 척을 하는, 혹은 아는 척을 넘어 확신을 주며 나의 유용함을 증명하는 직업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무언가 대단한 발표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지금부터 재밌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게'라고 되뇝니다. 그 이야기가 상대에게 영감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그래서인지 커리어의 출발점에서 생각보다 일하는 근육을 바르게 잘 쌓았습니다.
많은 기업인의 고민을 풀며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에 적극적이었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4년 차가 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무슨 일을 해도 잘 될 거 같아.' '난 뭘 하든 망하지 않을 거야.'라는 자기 확신이 생겼어요.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분석적이며 위험을 잘 분산할 수 있는 사람.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금세 행동으로 이어졌죠. 제 발로 회사를 떠나 배달의민족을 거쳐 사업가의 길에 뛰어든 게 바로 그 무렵이었어요. 사업 아이템은 '나만의 그림책'이었습니다. 마침 아이가 태어난 터라, 아이디어가 디벨롭된 측면도 있었어요. 아이 이름과 사진을 넣으면 이름에 맞는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사진이 합성되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업 아이디어였어요. 사업모델은 정교했습니다. 온갖 정부 지원 사업 피칭과 창업 경진대회를 휩쓸고 다녔어요. 예비 투자자들은 대박은 아니어도 '될 것 같아'보이는 이 사업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쏟아냈고, 컨설턴트 업으로 다져진 저의 화려한 말발이 빛을 발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2년의 더딘 시간을 보낸 후 함께 사업을 시작한 개발자 출신 동업자가 조심스레 퇴사 통보를 해왔어요. 이 지지부진함을 혼자 견딜 자신이 없어 저도 허무맹랑하게 조용히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왜 이 사업이 실패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동업자는 사업을 정리하고 헤어지던 날, 이렇게 말을 덧붙였어요. "마음 잘 추스르세요. 아마 사업한 기간의 절반정도..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실패를 인정하기도 어렵거든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더 편해질 겁니다." 그의 말은 귀신같이 들어맞았어요.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까지 딱 사업의 절반인 1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컨설팅 회사로 복귀해 일과 가정생활에만 충실했습니다. 1년 반이 지난 후 가까스로 어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고부터는 아무 일도 없던 양 컨설팅 일에 몰두했어요. 그러는 동안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실패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실패하려 하지도 않으며, 실패조차 할 수 없는 유능한 사람으로 나 자신을 다듬어가고 있었어요. '실패를 모르는 사람, 유용해서 유능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이사로 승진하며 더 공고해졌습니다. 이사인 저에게 회사가 기대한 건 '복수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장기적으로 쌓아가는' 소위 말해 영업적인 역할이었어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려면 PM으로 가지고 있던 책임과 권한을 이제는 후배 PM들과 나눠야 했습니다. 처음 PM을 경험하는 후배들이 프로젝트를 잘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육성하는 역할 또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철저히 후배 PM을 감시하고 관리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의 일정으로 보면 얼마만큼, 어떤 수준의 진도로 일이 진행돼 있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후배의 일 처리 하나하나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김규철 이사가 실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터득한 이야기입니다. '일잘러'로 승승장구하다 사업 실패를 겪었지만, 컨설턴트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하지만 이후 후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힙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일어날 법한 일이라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실무에서 인정받던 사람이 리더가 되면, 여전히 실무자의 시각으로 업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마이크로매니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큰 이슈가 터지고 나서야 이 상황을 직시합니다. 괜찮습니다. 리더라는 자리도 결국 처음이니까요. 다만, 실패하지 않겠다는 강박은 오히려 시야를 좁게 만들고 몸을 굳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실패라고 단정 짓곤 합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원점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입니다. 되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오히려 감사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실패를 수용하고 기꺼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용기, 그것이 진짜 성장의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요?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13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