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든여덟 번째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는 거죠.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거예요"
누군가 내게 하루가 어땠냐고 물으면 난 좋게 얘기하는 적이 별로 없다. 분명 좋은 일도 있었을 텐데 당연하듯 힘든 일, 어려운 일, 걱정스러운 일 먼저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은 그런 나의 부정적인 말들에 지쳐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라는 나의 푸념에 의사 선생님은 간단히 저렇게 말해주셨다.
평범한 하루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지나고 돌아보면 삐뚤빼뚤, 똑바로 걸어온 시간이 없다. 하루를 끝낼 쯤에는 직선처럼 반듯하게 지나온 것 같지만 일주일만 돌아봐도 고부랑길 처럼 되어 있다. 더 먼 시간을 돌아보면 시작했는 길 보다 먼 과거로 가기도 한다.
회사 사람이 점심시간이 지나서 사무실로 돌아오더니 뭔가를 나누어주는 소리가 났다. 여기저기 감사합니다, 이거 너무 좋아하는데, 고마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쳐다볼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다행히 내 차례까지 돌아왔다
"지나가다가 맛집이라고 줄 서 있길래 한참 기다렸다 사 왔어요"
언제나 넉살 좋은 그 동료는 나에게까지 웃으면서 설명했다. 그 사람 뒤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강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림자를 향해 연신 고맙다고 하고 일회용 접시하나를 받았다
꽈배기하나가 놓여 있었다. 얇은 내 팔뚝만 한 꽈배기가 설탕이 잔뜩 붙여진 채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갈색으로 거뭇거뭇 튀겨진 꽈배기에는 설탕이 잔뜩 뿌려져 있다. 커피랑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탕비실로 가니 같은 생각인지 그 좁은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비비 꼬인 꽈배기. 어렸을 때는 이게 왜 이렇게 웃겼을까.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꽈배기 하나를 물고 돌아다니는 날이면 입이나 옷에 묻을까 온신경을 쓰면서 먹었지만 결국 입 주변이 온통 설탕 범벅이 되었다. 웃고 떠들고 숨이 멈출 정도로 즐거워했었다. 이제는 황금 덩어리로 산을 만들어 주어도 그렇게 즐겁진 않을 것 같다.
20대가 끝나갈 무렵 그 사람과 살던 옥탑방은 시장거리에 있는 상가주택 꼭대기에 있었다. 옥탑방 창문에서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둘 다 퇴근하고 나면 가끔 시장에 가서 간식거리를 사서 먹었다. 간식이라기보다는 돈이 없어 한 끼를 때우기 위한 분식이라고나 할까. 난 설탕이 잔뜩 뿌려진 꽈배기와 떡볶이를 참 좋아했다. 꽈배기와 떡볶이를 사서 집에 돌아와 저녁대신 먹었다.
여름이 되기 전부터 뜨거운 열기가 창을 통해 들어왔다. 아직도 따뜻한 꽈배기를 굳이 풀어서 그 사람과 나누어 먹었다. 그걸 먹을 때마다 우리가 둘로 살아왔지만 결국 하나가 되어야 될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군말 없이 하나로 풀어진 꽈배기 조각을 받아 웃으면서 먹었다. 낡은 밥상 위에 쌓이는 설탕만큼이나 행복한 날들이었다. 꽈배기를 먹을 때는 언제나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 차있었다.
사무실 책상 칸막이 너머로 여름이 오는 게 보인다. 꽈배기를 풀었더니 책상 위에 설탕가루 조금 튀어 쌓였다. 한입 먹자 달고 고소한 맛이 넘어왔다. 오늘 하루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늦게 일어났고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고 회사에 늦었으며 팀장은 나에게 화를 내고 동료들은 날 남겨두고 밥을 먹으러 갔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 오늘 하루가 아니라 매일매일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꽈배기를 먹었잖아요. 얼마나 맛있었나 표현해 보세요'
네 너무 달고 고소해요. 살짝 느끼하긴 하지만 식은 커피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눈부시고 구름이 참 이쁘네요. 꽈배기가 정확히 똑같이 나누어졌어요.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손에 설탕이 묻었지만 아직 옷 위로 떨어지진 않았어요. 나머지 반도 내가 먹어야겠네요.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어요. 그런데 왜 눈물이 날 것 같죠. 너무 좋은 날이라서 그런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