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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un 02. 2024

마른 고등어의 숨결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든아홉 번째

죽고 싶냐고 물어보면 사실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어떤 고통들이 빨리 멈추길 바라는데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뿐. 약을 먹어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 말고 내 세상에서 그 걸 멈추고 싶은데 쉽지 않다.


온 세상이 푸르름으로 물드는 세상이 오면 더 그렇다 회색이 가득하고 모든 것이 말라비틀어진 겨울에는 혹독한 기분과는 달리 나도 세상의 일부같이 느껴진다. 나의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기에 오히려 삶을 이어가기 쉽다.


봄이 오고 온 세상이 윤기가 돌면 난 어디쯤에 반쯤 묻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몸이 휘청휘청한다.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고통에 어지러울 뿐. 떨어질 때의 각도와 시간 혹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온건한 정신을 유지하면 어떡하지 하는 실제적인 고민. 어처구니없다. 평상시에도 온전하지 못한 정신이면서.

 

휘청이다 뒤로 주저앉으면 죽고 싶지 않아 눈물이 난다. 날씨는 화창하고 난 죽고 싶지 않은데 사는 건 너무나 고통스럽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서둘러 집을 나왔다. 몇 년 전에 바꾸기 전에 다녔던 병원 선생님의 조언 중 유일하게 내가 따라 하는 것.


‘죽고 싶으면 빨리 집밖으로 나가라’


그것은 항상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밖으로 나온 다음 갈 곳이 없었다. 내려쬐는 햇살, 적당한 습도. 눈 부시게 좋은 날에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서둘러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년 된 흡혈귀처럼 햇볕에 닿으면 재로 변할 듯이.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다 보면 철조망 위로 겨우내 죽은 덩굴들 걸려있고 그 위를 새로 나온 파릇파릇한 덩굴들이 올라타고 있다. 조만간 저 말라빠진 덩굴들은 자취를 감추겠지.


모처럼 영등포에 내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무엇도 되고 싶지 않고 아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텅 빈 곳이 아닌 곳에 있고 싶었다.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지하철로 갈 만한 쇼핑몰을 찾아 영등포로 왔다.


분명 몰로 가려했는데 기억이 이상했던지 영등포시장역에 내리고 말았다. 일요일 시장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길을 걷다 보니 이 근처에서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생선구이 같은 것이었는데 솥밥과 구운 고등어가 나왔던 것 같다. 쓸데없이 골목길을 헤매면서 그 가게를 찾아본다. 그곳이 아직도 있다면 나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현실이랄 듯이.


마침내 찾아낸 모퉁이 상가에는 여전히 생선구이를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밖에서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여기서 생선구이를 먹은 것 같은데 이곳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이 든다.


식사시간임에도 넓은 홀에 손님이 한 명이 있었다. 나 자신. 피곤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물을 가지고 오셨다. 고등어구이 정식 주세요. 물병을 놓고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드럼통으로 된 끈적끈적한 테이블, 계속 고쳐 써진 메뉴판,  어두침침한 실내와 낡고 찢어진 오래된 주류 광고 포스터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풍의 가게와 지금 이 가게는 매우 닮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생기가 없다. 살아있는 느낌이 없다.


고등어 구이가 접시에 담아져서 나머지 반찬들과 나왔다. 반찬들은 윤기가 없고 공깃밥은 반도 안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고등어는 마른 고등어를 구운 건지 살이 거의 없다. 어떠한 곳에도 생기랄게 없다


마치 나처럼. 갑자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누구와 이곳에 왔었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어차피 기억도 안 나니까.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전히 생기 없이 사그라지고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느낌이 어처구니없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마른 고등어구이의 비린내는 너무 심해서 생수를 먹을 때 물비린까지 나게 했다.


한두 수저 먹고 내려놓았다. 밖으로 나왔더니 햇살은 더 뜨거워졌다. 멀리서 윤기 나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물속에서 나온 지 오래된 물고기 영혼 같은 나는 사람들로 반짝이는 그곳으로 터덜터덜 길을 걸어갔다.

나는 살아있다. 여전히 살아있다. 반짝이는 그곳으로 흔들흔들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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