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 번째
마음의 병은 감기와 같다. 약을 먹으면 증상이 호전되지만 결국 내 몸이 좋아져야 감기는
낫는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라서 내 몸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 되돌아오는 악몽이 될 뿐이다. 약에 취해 있거나 끝없이 되돌아가거나.
몸을 움직여라.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크게 움직이는 것이다. 춤을 추던 달리기를 하던 빨리 걷든 간에 일단 빨리 움직이면 마음의 상태가 확 바뀌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재빨리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건 이제 없다. 넘어져서 다친 상처가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는 때와 다르다. 이제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건 나쁜 것들밖에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깨를 펴본다.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기억은 나는 노래. 좋아하는 노래 중에는 춤을 출 수 있는 노래가 없다
빙글빙글 돌면서 부르는 노래는 마치 벽에서 나는 소리처럼 멀리서 다시 들려온다. 기분만 행동을 제어하는 게 아니다. 행동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마음을 잘 지배한다. 즐거운 노래와 나의 움직임이 조금씩 내 신경을 달아오르게 한다. 어느 정도에서 멈춰야 하는지 모르지만 바닥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창밖의 하늘은 오늘따라 너무 푸르다. 눈이 아프게 흰구름은 멀리 산 위에서 피어 올라오고 있다. 마치 솜사탕처럼.
솜사탕 하나를 들고 거리를 따라 걸었다.
무인 문방구 앞에 솜사탕을 파는 작은 트럭이 왔다. 속속 지나가는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하교시간은 한참 지났고 아마 학원을 갔다 오는 게 아닐까. 목적지가 있는 잰 발걸음. 나보다 분주하다. 트럭 안에는 기분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며 웃고 있다. 내가 왔음을 기척으로 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저씨 솜사탕 하나 주세요
깜짝 놀라 나를 보더니 다시 방긋 웃으며 어떤 캐릭터로 만들어 줄까를 묻는다. 송사탕은 구름처럼 만들어주시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아래를 봤더니 다양한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다.
레인보우로요
하얀색 구름 위에 핑크색과 하늘색 구름들이 더해져서, 진짜 무지개 같지는 않지만 그럴듯한 기분이 났다. 하늘 구름과 똑같이 생긴 솜사탕을 들고 길을 걸으니 유치원 정도 되는 아이들의 관심이 나를 쫓아온다. 마침내 한 아이가 와서 내게 묻는다. 그거 어디서 샀어요?
응 저기 문방구 앞에서.
귀여운 대답과 함께 작은 등이 멀어져 간다. 아이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 나도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을 텐데. 지금 쯤이면 저만했을 텐데. 수많가지 생각이 다시 머리를 스친다. 팔을 들고 힘차게 다시 걸어간다. 솜사탕이 허물 질까 봐 먹지 않고 계속 들고 있다. 뜨거운 햇살이 솜사탕을 녹일 것 같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덧 하늘의 구름이 산 뒤로 사라져 버렸다. 푸르지만 그 끝은 약간 회색인 하늘이 산너머까지 펼쳐져 있다. 내 끝은 푸를 거야.
어렸을 때 난 장날이나 놀이동산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 가면 꼭 사 먹는 솜사탕 같은 것도 잘 먹지 않았다. 한입 물었을 때의 텁텁하고 끈적임이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한 건 한없이 줄어드는 그 크기. 겉으론 풍성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뼈대밖에 없는 솜사탕. 다 커서는 솜사탕 같은 나 자신을 들킬까 봐 무서웠다. 웃고 있지만 누군가 조금만 만져도 앙상한 뼈대만 남아 없어질.
유원지나 놀이동산에 가면 내게 어울린다고 솜사탕을 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솜사탕과 어울리는 것일까. 버리지 못하고 하루종일 들고 다녔다. 그러다 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몰래 손으로 쭈그려 뜨려 버리곤 했다.
밤이 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딘가 알 수 없는 테이블에 나는 앉아 있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내가 사는 집이 보인다. 오늘 하루 어땠나요.
솜사탕같이 풍성하고 기분 좋은 하루였어요
왜 난 나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생각이 머리의 경계석을 부수고 있길래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에는 솜사탕을 들고 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부르면서 있는 힘껏 팔을 크게 흔들며 집으로 돌아갔다. 솜사탕 같이 기분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