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한 번째
불려지는 이름은 대부분 실제 모습을 투영한다. 아니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꽃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꽃 같고 나무라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나무 같다.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아무도 날 부르지 않아 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꽃이나 나무 같은 것이면 좋겠는데 이름조차 없는 어떤 뭉텅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어떤 뭉텅이 말이다. 오늘 같이 화창한 날에는 어디선가 다정히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하얀 소음들뿐. 흠칫 놀라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면 또 들려오는 목소리. 소근 거림. 날 뭐라고 불렀던 거지?
벌써 점심시간인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가면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직관적이고 설명적인 그런 음식이름들은 머릿속에 팍팍 박히게 된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것들이 있다. 감자탕. 오늘 누군가 나가면서 감자탕얘기를 한 것 같다. 이 더운 날에. 옛날에 이 이름만 들었을 때는 당연히 감자로 탕을 끓인, 감잣국 혹은 토란국 같은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술 좋아하는 이들은 이른 나이부터 이 음식을 접했겠지만 나는 술도, 모임도 좋아하지 않아 20대 중반이 넘어서 처음 이 음식을 접했다.
친구들이 감자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길래 웬일로 술이 아니라 감자탕이지 하고 좋아라 하며 따라갔다. 여느 한식당과 다를 바 없는 좌식 테이블 가운데 가스 화로가 있었다. 잠시 후 뭔가 산더미 같이 쌓인 음식이 냄비에 담아져 나왔다. 감자가 구석에 조금 보였지만 대부분 깨가루에 덥혀 속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벌써 소주를 시켜 주고받고 있고 난 팔팔 끓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먹을 때가 된 듯하여 국자로 들추어 보니 충격적인 비주얼이 드러났다. 비쭉비쭉한 뼈가 수북이 샇여있는 것이다. 갈비뼈 같은 게 아니라 척추뼈같이 생긴 뼈였고 고기들은 그 뼈사이에 조금씩 붙어 있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비주얼에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친구들은 손으로 뼈를 들고 분해해서 쪽쪽 빨아먹는 것이었다. 이 무슨 짐승만도 못한 비주얼인지. 당분간 감자탕집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 비주얼은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회사 사람들과 해장국집에 갈 일이 생겼다. 그곳은 뼈다귀 해장국이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그 메뉴 외에는 아예 메뉴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도 동일한 메뉴를 시켰다. 해장국이 나왔는데 당연하게 또 척추뼈가 나와 얼어붙어 버렸다. 다들 뼈를 들고 먹는데 난 그럴 자신은 없고 뼈를 작은 그릇에 담아서 젓가락으로 고기만 덜어내서 먹었다. 배가 너무 고픈 상태로 들어와서 안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고기는 냄새도 없이 부드러웠고 수제비가 있는 국물은 약간 된장향이 나는 게 먹을 만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먹어보니 먹을만한 것이다.
그 이후로 감자탕집에도 가게 되고 뼈해장국은 점점 일상적인 메뉴가 되었다. 뼈에 붙어먹기 힘든 고기이긴 하지만 뼈다귀해장국 특유의 맛이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젓가락으로 고기를 떼어내서 먹는다. 사람들은 내가 먹고 남은 뼈를 보면 고기가 많아서 너무 아깝다고 왜 그렇게 먹냐고 한소리를 하는 편이다. 감자탕 같은 경우는 같이 나눠먹는 음식이다 보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뼈다귀해장국은 개인음식인데 왜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 싶다. 난 젓가락으로 하나씩 고기를 발라낸 후 그동안 식은 고기를 다 모아서 따듯한 국물에 담가서 데워 먹는다. 하얀 밥 위에 국물에 촉촉이 젖은 고기를 몇 점 올려 먹으면 정말 맛이 있다.
난 한번 들인 습관이 잘 바뀌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바꾸고 싶지 않다. 뭔가 노력해서 바꾸는 것을 싫어해서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수많은 정보를 얻어 그 일을 이해하고 바른 자세로 시작한다. 물론 처음 뼈해장국을 먹는 심정으로 임시방편에 능하게 매사 임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만은 애당초 그런 게 어려운 인간이라 인생이 고단한 것이다.
자주 가는 뼈해장국집은 1인용 테이블이 창가를 따라 놓여있어 혼자 가기 편한 곳이다. 하지만 여전히 눈치를 보면서 먹게 된다. 그리고 요즘 들어 뼈해장국에 들어있는 뼈의 개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해장국 그릇 위로 산더미 같이 쌓인 뼈와 우거지가 나와야 하는데 오늘은 급기야 뼈가 보이지도 않고 국물 안에 뼛조각 두 개 정도가 잠겨있을 뿐이었다. 우거지는 언제부터인지 안 나오는 집이 더 많아졌고 이 집도 그런 집중 하나가 되었다. 뼈다귀해장국인데 뼈다귀가 보이지 않다니. 이걸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만 내가 그런 일에 나설 사람은 아니니까. 고작 뼈다귀 몇 개에도 애써 익숙해진 나의 삶에 균열이 온다. 그래도 남은 뼈에 집중 또 집중.
뼈다귀해장국 같은 걸로 불리는 기분은 어떨까. 맛은 있는데 약간 징그러운 이름. 먹어보면 진국인데 이름이 안 좋아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런 것. 아니면 푸아그라처럼 멋져 보이지만 먹어보면 입맛에 맞지 않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행복할까. 어떤 이름이든 필요하니까 불리는 것이다. 뼈다귀해장국 같은 이상한 이름부터 코르동 블루 같은 아름다운 이름까지 수없이 많은 음식들이 있다. 불리는 이름과 같이 상상되는 요리들. 난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것일까. 아름다운 이름이고 싶다. 다정한 목소리가 날 불렀을 때 그 안에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이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