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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01. 2023

이역만리 쌀국수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홉 번째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조금씩 할 만 해지고 있다. 어떤 책에서 본 방법대로 무조건 5,4,3,2,1 숫자를 세고 벌떡 일어난다. 물론 실패하는 날도 있다. 이불 개기만 실패가 없을 뿐이지 다른 일들은 그날그날 항상 다르다. 그래도 가장 최고 힘들었던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자신감이 생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창밖으로 한참 올라오고 있는 건물들의 실루엣과 하나둘씩 불이 들어와 있는 아파트들을 보고 있으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시멘트로 범벅이 된 도시의 10년 후의 모습은 어떠할까? 불이 들어와 있는 한밤의 도시는 빛에 가려 그런대로 봐줄 만 하지만 해뜨기 전 이 도시는 마치 폐허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경기도 서쪽 외곽지역이다. 어느 정도 서쪽이냐 하면 집에서 나와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닷가에 닿을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갈매기가 날고 모래사장이 있는 그런 바닷가는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과 공장, 소각장등이 있어 바다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나마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뻘밭은 대부분 잿빛으로 삭막하다. 그에 비해 길들은 시원시원하게 만들어져 있고 그 도로들 근처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어지고 있는데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지니가 만드는 듯 눈 깜빡할 사이에 몇 채식 갑자기 나타나곤 한다. 그런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 사이 땅들에는 또 수많은 빌라들이 있다. 인구도 많지 않은 곳에 수없이 많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만들어지는 광경은 천일야화 속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건설일감들, 주변에 인접한 공장들과 빌라촌의 낮은 집값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외국인들을 하나둘씩 불러 모아갔다. 지금은 꽤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빌라 사이를 걸어가거나 근처 편의점을 갈 때면 삼삼오오 모여있는 외국인들을 보곤 했는데 요즘은 공원이나 공공체육시설등에서 운동을 하는 외국인 무리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인터넷 아파트 커뮤니티에서는 외국인들이 늘어 치안이 안 좋아질 것 같다고 걱정들을 한다. 피부가 우리보다 피부가 어두운 외국인들에 대해서 말이다. 젊은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운동도 하고 길을 걷으면서 깔깔 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보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지나가곤 한다. 그 표정에는 두려움과 의심이 서려있다.


회사다닐때 동남아업무를 자주 했던 나는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며 심지어 한국인보다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 사람을 만날 때 느껴지는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외국 사람들에게서는 느끼지 않는다. 물론 피해의식에 기댄 나의 편견일 가능성이 크다. 또는 내가 그들보다 선진국에서 산다는 우월감에 주눅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덩치 큰 백인들을 볼 때 잘 주눅 드는 것을 보면 아마 후자 쪽이 가까운 것 같다. 어쨌든 동남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식당들도 늘어나고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식당거리에는 100미터 간격으로 베트남 사람이 직접 하는 쌀국숫집이 몇 개가 동시에 생겼다. 이렇게 외진 곳에 누가 쌀국수를 먹으러 여기까지 오나 싶어 가보면 젊은 베트남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한국 사람은 덤이고 자국의 동포들을 위한 식당이다.

 

그중에 내가 정착한 쌀국숫집은 테이블이 5개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가게이다. 대부분 베트남사람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고 아주 가끔 아이를 동반한 한국 가족들도 방문하곤 하는데 한국 사람이 나 혼자인 경우가 더 많다. 가격은 저렴해서 5000원 정도에 쌀국수를 먹을 수 있다. 고기를 삶아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직접 그 과정을 본 적이 없는 고기육수에 쌀로 만든 면을 넣고 고수와 고기가 토핑처럼 몇 개 올라간 쌀국수가 메인요리이다. 숙주나물이 잔뜩 들어있는 그 국수는 먹을 때는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쌀국수 하면 바로 이 집이 생각날 정도의 맛은 있다.

 

이 집의 홀을 보는 사장님은 5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를 둔, 30대 초반으로 생각되는 베트남 여성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그 여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60대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이다. 할머니인가 싶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보이지만 둘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모녀와 같고 젊은 여성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마 그 정도 나이가 맞을 것이다. 

주문을 하면 대부분 30대 여성이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다주지만 가끔은 안쪽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요리를 들고 나와 홀에 전달해 줄 때가 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평생 일만 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홀에 있는 여성에게 요리를 전달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굳게 다문 입, 웃음기 없는 눈, 그리고 수없이 많은 주름들이 감정을 더 깊이 밀어 넣어 무표정을 만든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온갖 풍파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만이 갖는 강인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일만 한 사람, 가족을 위해 항상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사람, 이역만리 낯선 땅에 자식들이 뿌리내리기를 바라며 온몸을 부수면서 늙어가는 사람이 풍겨오는 그 강하고 쓸쓸한 느낌이 이 가게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언제 가도 변함없을 것 같던 그 맛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맛이 없어진 것은 아닌데 묘하게 예전 맛은 아닌데 생각하기 시작한 그즈음부터 주방을 담당하던 여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홀을 보던 여성은 아이만 테이블에 남겨두고 홀과 주방을 부산하게 오가며 일을 한다. 한두 번 정도는 어디 아프신가 생각했지만 몇 개월 넘게 보이지 않자 돌아가셨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묘하게 변한 맛이지만 여전히 맛이 좋은 그 쌀국숫집을 난 아직도 다니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식의 변화는 차곡차곡 쌓여 수면아래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계속해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변화에 올라타서 꾸역꾸역 뭍으로 기어 나온다. 가지 않으면 될 일이지만 새로운 곳에 가면 그곳이 더 생각날 것이 뻔하기에 나는 쌀국수가 생각나면 그 집에 갔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한다. 젊은 여성은 금방 쌀국수를 가지고 나와 내 테이블에 올려준다. 쌀국수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어떤 그리운 맛이 조금씩 날 다시 위로 끌고 올라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뭍으로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차가운 밑바닥 언저리에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음식을 준 젊은 여성은 어느새 자리에 앉아 딸과 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다. 마치 그 뒤편 주방에서 누군가 나와서 자기 딸을 부르며 음식을 전해 줄 것 같지만 어둑한 주방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역만리에서 온 그 나이 든 여성은 이 땅에서 행복했을까. 나와 같이 이 폐허 같은 땅 위에 발 딛고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일어서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마지막을 맞이하든 그 끝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그렇게 수없이 되새기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젊은 주인은 또 오세요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했지만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남은 자들도 꼭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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