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Oct 25. 2023

나초 나초 킹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스물일곱 번째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안전 부절함은 심해진다. 그 사람은 먼저 연락을 해오곤 하지만 답장이 빠른 편이 아니다. 나는 확인은 늦지만 답장은 빠른 편이어서 핸드폰을 들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안절부절못함은 겨우 쌓아온 나의 습관들을 박살을 내고 있다. 이불속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아침을 보내는 것 같은 한심한 일들로 다시 돌아왔다. 약에 취해 이불 하나도 개지 못한다. 한동안은 멍하니 있었지만 그나마 요즘은 OTT가 잘되어 있어 예전 영화를 주로 본다. 집중이 안 되는 상황에서 처음 보는 영화는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예전에 본 영화만 보고 또  보게 되는 것이다.


중학생 이후로 난 세상의 모든 것을 영화를 통해 배웠다. 다들 그렇겠지만 꿈과 희망이 가득한, 상업적인 할리우드영화로 시작해서 미국의 인디영화들, 유럽영화, 제3세계 영화 등등을 거쳐 다양한 예술 영화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영화광이 된 내 어린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는 단연코 미국이다. 한국에 살면서 그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이 없을 거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영화의 영향아래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어릴 적 꿈은 할리우드가 있는 엘에이에 가는 것이었다. 달러 한 푼이라도 산업부흥에 쓰이지 않고 헛되이 외국으로 나갈까 봐 해외여행에 자유롭지 못했던 80년대가 난 미치도록 답답했다. 슬슬 문호를 개방했던 90년대부터 겨우  해외에 나가기 시작했다.

캐나다, 일본, 유럽, 중국,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등 다양한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게 되었지만 이상하게 미국과의 인연은 없었다. 그러면서 80년대에 있던 미국에 대한 열병은 조금씩 사그라져갔다.


그러다가 21세기가 넘어 드디어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엘에이 공항을 나올 때의 그 가슴 두근 거림을 잊지 못한다. 강렬한 햇빛에 모든 게 녹아 버릴 것 같은 풍경 곳곳에 커다란 야자수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내가 기억하는 엘에이의 모습이 나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차를 렌트해서 중심지로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낡아 있었다. 햇빛아래 모든 것이 부스러질 것 같이 낡았다. 영화에서 보던 야자 가로수는 그대로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갈라진 바닥의 거리 곁으로 수없이 놓여 있는 낮고도 낡은 건물들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시내중심이나 관광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회사일정 때문에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세월에 사그라진 길을 따라 계속 가야만 했다. 낡은 건물을 지나 낡은 건물, 또 낡은 건물들을 지나 미팅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리에 정말 많은 멕시코 인들이 있었다. 주차장에도 작은 상점가에도 멕시코인들이 너무 많아서 미국의 전부가 멕시코가 된 느낌이었다. 공항을 나설 때 내려쬐던 눈부신 햇빛이 황량한 사막의 따가움으로 변해 거리마다 걸어가는 멕시코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간단한 첫날 업무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왔지만 어딜 가야 할지 못 정하고 정처 없이 차를 몰고 다녔다. 결국 어딘지 모르는 곳에 모르는 모양으로, 모르는 시간에 만들어진 작은 몰에 들어갔다. 우중충한 내부 불빛은 좀비영화에 나오는 도망친 사람들이 가는 마지막 대피소 같은 느낌의 몰이었다. 여길 왜 들어왔나 싶은 후회가 들었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푸드 코트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커다란 푸드코트에서 당연하게 멕시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홀린 듯이 식당에 갔는데 딱히 아는 음식이 없었다. 나초칩은 먹어도 배가 안부를 것 같지만 그나마 아는 거라 주문했고 과자로 배가 찰까 싶어 쌀을 채워 넣은 음식이 있어 주문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브리또라는 요리였다. 주문한 요리를 받아 들고 식탁테이블에 앉았다. 나초칩은 바구니에 산처럼 쌓여있고 브리또는 내 팔뚝 두 개만 한 두께의 롤이었는데 반으로 갈라서 내어주었다. 브리또 안에는 붉은색 쌀과 고기, 야채가 같이 들어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밥공기로 따지면 4 공기 이상 들어갈 것 같은 크기에 고기도 얼마나 넣은 건지 한근이 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 있게 잎이 찢어져라 벌리고 한 잎 배어 물었는데 퍽퍽한 데다가 이상한 고기향 때문에 욕지기가 났지만 그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 잎 겨우 먹고 브리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쵸칩만 계속 먹었다. 하루종일 멕시코와 씨름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브리또는 멕시코 오리지널 음식도 아니었다. 어쨌든 배가 고파서인지 나초는 먹을 만했고 과자 부스러기라도 산더미처럼 먹으면 배 부르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강렬한 미국의 첫 체험 이후 난 영어 이름을 나초 박이라고 지었다. 이후 미국에서 일할 때 멕시코 음식을 먹은 적은 없지만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나를 나초 박이라고 반 농담 삼아 불러 주었다. 이름은 참 희한한 게 이름이 불리어지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나초 박이라는 약간 우스운 느낌의 이름 때문인지 미국에서 일할 때 나는 약간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멕시코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느낌까지는 아니어도 한국에서의 나를 생각하면 전혀 딴 사람 같이 느껴졌다. 살짝 미소 짓고 조금 긍정적이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이 살지만 오늘을 불행해하지는 않았다. 엘에이에 대한 느낌은 실망이었지만 나초 박으로의 변신은 성공적이고 그 가벼운 느낌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미국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 난 말도 없고 부정적이고 내일은 더 불행할 것 같은 내 본명으로 돌아왔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종일 연락이 오지 않아 난 혼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주변에 먹을만한 식당을 찾다가 우연히 멕시코 요리 전문점을 찾았다. 찾아간 곳은 평범한 가게 외관에 멕시코 모자를 쓴 콧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가게였고 손님은 나 혼자였다. 가게에 사람이 없으면 차분하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메뉴를 한 참 봤지만 모르는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나초와 브리또를 주문했다. 몇 개 안 되는 나초칩과 내 손목보다 얇은 브리또가 나왔다. 아주 많이 실망했지만 일단 브리또를 먼저 먹기 시작했다. 작아서 먹기는 좋군 하고 큼지막히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브리또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크기는 매우 작지만 좋은 식감의 쌀, 싱싱한 채소, 부드러운 고기가 들어있는 훌륭한 음식이었다. 크기가 작아서 금방 먹어버렸다. 아쉬웠다. 맛은 있었지만 너무 작아 즐거운 순간이 짧아져버린 아쉬움이었다. 산더미 같은 나초칩과 코끼리 다리 같았던 한 맛없던 브리또를 먹을 수 있던 엘에이가 생각났다. 그 안에서 만났던 멕시코인들도. 내가 미국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면 그 삶은 부드러웠을까?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삶은 여전히 퍽퍽하지만 브리또는 작고 부드러웠다.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해장국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