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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10. 2023

기억나지 않는 텐동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세 번째

나와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동료가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마치 자기들이 일본 여행을 가는 것 마냥 들떠서 오전 내내 수다를 떨더니 급기야 다 같이 일본식 덮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럴 기분은 전혀 아니었지만 어쩐지 이야기의 중심에 내가 있어 따로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무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다른 동료가 자기가 같이 가고 싶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나를 돌아보길래 우주의 탄생과 맞먹는 힘을 발휘해서 겨우 입꼬리를 올려 보여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잡힌 해외 출장이었다. 아마도 그 새로운 동료에게 인수인계를 하면 다시는 갈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오전에 가야 할 출장지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있자니 기대감은 전혀 없고 답답한 마음만이 느껴져서 나이 듦에 대한 서글픔이 밀려왔다. 출장과 여행은 다르다. 어느 순간  해외출장은 너무나 고통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처럼 아랫사람을 모시고 가야 하면 더 불편하다. 난 평생을 일하며 회사 선배들이나 손윗사람들에게 맞춰 왔기 때문에 후배들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처음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트렌드에 맞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챙겨보고 SNS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 아주 미약하나마 있던 연결고리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지진이 나듯 쩍 벌어지며 갈라져서 다시는 붙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틈이 매워지질 않았다. 비행기라도 떨어져 앉으려고 통로 쪽에 앉는다는 핑계로 멀찌감치 에 있는 좌석을 예약했다.


신입 때만 해도 해외 출장이 잡히면 선배들 의전계획을 생각하며 받는 스트레스보다 새로운 세상을 보러 간다는 기대감이 더 컸었다. 그 기대감은 이제 내 마음속 어디엔가 쭈그러져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다. 결국 변한 것은 내 마음일 뿐 해외출장도, 비행기의 좌석도, 동료와의 거리도 아니었다. 


처음 가본 곳은 일본 도쿄였다. 회사에서 가는 연수 차원의 방문이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빼곡히 채워져 있는 견학 위주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처음 가보는 해외에 대한 기대와 일본 문화를 보고 듣고 읽고 자란 세대라서 가졌었던 막연한 동경이 어우러져 기대감이 대폭발 해버렸다.

일본 땅을 처음 밟았을 때의 물기 있는 냄새가 아직도 기억나는 듯하다. 도착 후 지루하게 이어진 견학등 업무를 마치고 마침내 우리는 시부야에 갈 수 있었다. 처음 역을 내렸을 때 그 오거리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항상 보던 그대로였다. 하지만 골목골목을 헤매다 보니 점점 한국과 차이가 없어져갔다. 일본어가 있는 간판 빼고는 서울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명하다는 초밥집에서 먹은 고등어초밥은 비리기만 했다.


나는 너무 실망해서 한동안 일본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다양한 일본 음식점들이 한국에 생기기 시작했다. 라멘집을 필두로 우동, 덮밥 등등의 가게들이 생겨났고 일본식 인테리리어를 한 오픈된 주방에서 일본식 옷차림을 한 주방장들이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며 손님들을 맞아주었다. 난 의외로 한국에서 먹는 일본 음식들이 입맛에 맞았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 먹는 일본음식은 더 맛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일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에서도 맛있는 집도 있고 맛없는 집도 있고 동네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 오키나와에 갔을 때 처음으로 텐동 식당을 가게 되었다. 눈이 부시게 파란 바닷가를 따라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한적한 식당이 있어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들어가고 나서야 튀김을 밥 위에 얹어서 먹는 덮밥이라는 걸 알았다. 튀김을 반찬으로 먹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동그랑땡이나 고기 전 같은 음식들도 밥반찬으로 잘 먹지 않았다. 떡볶이도 마찬가지고.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어떻게 반찬이 될 수 있을까. 밥에 프렌치프라이를 얻어 반찬으로 먹는 느낌이다. 어쨌든 이미 들어가서 나오기도 뭐 하고 해서 가장 기본인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후 일본식 사발그릇에 튀김이 잔뜩 올라간 요리가 나왔다. 믹스된 야채, 새우, 고구마, 가지 튀김등이 밥 위에 올려져 있고 갈색의 소스가 뿌려져 있어 밥에 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밥 위에 뭔가를 섞어 먹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밥의 열기 위에 올라져 있는 데다가 소스까지 뿌리면 그 튀김들이 얼마나 눅눅할까 생각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야채튀김을 한입 깨물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바삭한 느낌의 튀김은 처음이었다. 야채튀김뿐 아니라 새우도 가지도 모든 튀김이 아삭바삭하고 소스가 묻은 부분은 달짝지근하니 너무도 맛있는 것이었다. 소스가 묻은 밥조차 맛있었다. 난 소스와 밥이 혼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텐동은 그 예외가 - 난 규동을 좋아하면서도 밥에 소스 범벅이 된 걸 싫어한다-될 첫 번째 요리로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졌다. 미소장국과 튀김과 간장소스와 밥이 그렇게 잘 어울리다니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은 무섭지만 성공의 대가는 달콤하다. 


이후 난 한국으로 돌아와서 종종 텐동을 찾아서 먹곤 했는데 첫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오키나와에서 만큼 맛있는 기억을 주지 못했다. 한국에서 먹는 텐동에 점점 익숙해짐에 따라 오키나와 텐동의 맛이 머리로만 기억되고 혀로는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계속됨에 따라 텐동은 그저 그런 음식이 되어버렸다. 


오늘 동료들과 간 곳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텐동맛집이라고 했다. 역시나 긴 줄이 서있었다. 이십 분을 기다렸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주 작은 가게였다. 조용히 안내받았다. 요즘 일본식 식당에서는 어설픈 이랏샤이맛세를 외치지 않아서 좋다. 딴 걸 먹을까 찾아보았지만 메뉴는 텐동들 뿐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에비텐동(새우튀김이 들어간)을 주문했다.


얼마 후 음식이 나왔고 튀김의 비주얼은 일단 합격이었다. 새우튀김을 들고 기분 좋게 한입 먹었는데 기름이 오래된 것인지 너무 무겁고 느끼했다. 다른 튀김들도 마찬가지였다. 두세 번을 튀겼을 법한 튀김옷의 딱딱함, 신선도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기름의 향, 시판되는 소스를 마구잡이로 쏟아부어 양념에 푹 잠겨있는 밥은 내가 아는 텐동의 마지막 기억을 박살 내 버렸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렇게 맛도 없는 음식은 대체 어떤 사람이 만드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에 흘깃 주방을 돌아보았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주방장과 눈이 마주쳤다. 새하얀 작업복과 극명하게 돼 비 되는 검은 검버섯이 가득한 눈가, 자글자글한 주름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목, 힘이 없어 살짝 벌어진 입, 새하얀 모자사이로 삐져나온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는 머리카락을 가진 주방장은 카운터에서 활기 넘치게 우리 주문표를 받아 계산하고 있는 젊은 사장과 비교되어 블랙홀처럼 주변의 색채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던, 세월과 피로에 지친 두 눈이 내 마음에 팍 꽂혀버렸다.


한국에서의 텐동은 대부분 실패했다. 거기다 이제 그 요리사의 그 눈빛까지 추가될 것이다. 노선을 바꾸어야만 했다. 이 정도에서 내 기억이 잘못되어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깨끗한 해안도로의 적막함, 혼자서 떠난 여행에 대한 뜰뜸, 낯선 세계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저 너무나도 파랬던 오키나와의 바다와 더 파랬던 나의 젊음이 그 맛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이젠 그렇게 믿기로 했다. 기억 속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가 아니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이 바뀜을 알고 있다.


난 결심을 했고 내 눈은 절대 그렇게 늙어가지 않을 것이다.

난 결심을 했고 이제부터 먹는 텐동은 맛이 있을 것이다. 

난 결심을 했고 즐겁게 출장을 준비할 것이다. 


가짜라도 계속 믿으면 진짜가 된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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