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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08. 2023

악순환의 짬뽕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두 번째

저녁에 매운 것을 먹고 자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느낌이다. 가뜩이나 깊이 잠들지 못하는데 매운 음식은 불편한 속으로 날 밤새 괴롭혔다. 아침 알람이 울리고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어보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원래는 카운트다운에 맞추어 벌떡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이불 위에 누워있다. 세 번의 알람이 울리고서야 난 일어났고 왠지 모르게 너무 화가 나서 이불을 걷어차서 방 한쪽구석으로 밀어버렸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아침 정시에 일어나기와 이불 개기만은 하고 있었는데 고작 어제 먹은 저녁때문에 십여 일의 습관이 깨어져 버렸다. 


아픈 속을 달래고자 생수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서 먹었다. 컵에서 물비린대가 역겁게 피어올랐다. 어제 저녁에 일이 늦게 끝나게 되어 저녁을 먹고 가자는 동료의 말에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그 근방에서 유명한 짬뽕전문점이라고 하는데 생긴 지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거의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음에도 가게 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짜장을 시킬까 하다가 짬뽕전문점의 짜장이란 게 물조절 못한 짜파게티만도 못한 맛이라는 걸 이미 알길래 짬뽕을 시켰었다. 동료가 날 빤히 쳐다보더니 매운 거 못드시지 않냐고 물었다.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요즘은 짬뽕이 대세다. 여기도 짬뽕 저기도 짬뽕. 예전엔 수타짜장, 해물 손짜장, 돌짜장 등등 짜장집이 많았는데 요즘은 대부분이 짬뽕이 주력이고 그것도 아주 맵다. 짜장은 주력 상품이 아니거나 심지어 그것마저 맵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 짬뽕은 짜장만큼이나 오래된 음식은 맞겠지만 어렸을 때는 매운 것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짜장면을 먼저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선호도는 짜장면 쪽이 좀 더 폭넓지 않을까 싶어 오래가지 못할 트렌드인 것 같지만 지금 당장은 대세가 맞다. 


내가 어렸을 때 짜장을 시키면 어른들은 짬뽕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한 수저 얻어 먹어보면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맵기만 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커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매운 걸 잘 못 먹었던 나는 동료들이 원해서 간 짬뽕 전문점에서 구색 메뉴인 짜장을 시키거나 그것마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짬뽕을 먹곤 했다. 국물은 안 먹고 건더기와 면만 겨우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난 매운걸 잘 못 먹어서 라면도 진라면 순한 맛이나 안성탕면 같이 덜 매운 것들만 먹는다. 


그런데 예전에는 짬뽕이 무슨 탕이나 국처럼 느껴졌는데 요즘 짬뽕은 국물이 있는 맵게 볶은 면요리 같이 변했다. 아니면 예전부터 그랬는데 내가 몰랐을 수도 있다. 살짝 맵고 깔끔한 맛이라기보다는 아주 맵고 텁텁하지만 진한 맛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짬뽕을 만들 때 탕처럼 끓이는 것이 아니라 야채와 해물을 볶다가 마지막에 육수를 넣어 내어준다고 한다. 한마디로 국물 많은 볶음요리이다. 그래서 탕수욕이나 짜장을 먹을 때 짬뽕국물 좀 주세요 하면 요즘은 볶아서 내어야 해서 주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밖의 짬뽕이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에게 짬뽕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진한 육개장스러운,  전문점들의 짬뽕을 자의 반 타의 반 자주 먹게 되니 최근에는 맛있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특히나 추운 날은 살짝 매운 짬뽕이 당기기까지 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속풀이로 당긴다고 하던데 술도 안 먹고 매운 것도 싫어하는 내가 짬뽕이 당길 줄은 몰랐다. 드디어 자기 최면이 통한 것인가! 살짝 매운 짬뽕국물 한 모금을 탁 넘기는 생각을 하면서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한다. 


이렇게 매운맛에 길들여지는 건가 싶었다. 다만 요즘 짬뽕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하나가 대왕오징어였다. 예전에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그런 오징어가 짬뽕에 들어있었다면 요즘은 어디 해외에서 잡히는 커다란 대왕오징어의 속살이 얇게 썰어져 들어간다. 식감도 비슷하고 푸짐하게 줘서 좋기는 한데 대왕오징어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암모니아 냄새 같기도 하고 신내 같기도 한 그 냄새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조리를 잘하는 요릿집에서는 그 냄새를 잡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냄새가 완전히 없어진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다. 대왕 오징어 생각을 하면 그 맛만 계속 입안에 맴돈다.


한 가지에 집착하면 계속 그 생각에 몰입하게 되고 그게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땅속까지 기분이 내려가게 되는 나는 짬뽕을 먹을 때 최대한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먹을 때마다 다른 좋은 점을 생각하며 먹었다. 주꾸미의 익힘이 좋아서 부드럽다거나 새우가 칵테일 새우가 아니라 생새우라던가 특이하게 전복살이 있네 하는 좋은 부분에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해서 먹으면 극복할 뿐 아니라 없는 맛까지 생기는 경우도 있기는 듯했다. 원래 장점이 많으면 단점을 덮고도 남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내 약한 영혼은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집중하고 몰입하면 가까스로 극복은 된다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짬뽕이 진짜 맛있는 건지 짬뽕이 날 가스라이팅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그렇게까지 해서 짬뽕을 먹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럼 한국에서 짬뽕 안 먹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나? 하고 되묻고 싶다. 그렇게 내성이 생겼다. 나도 이제 짬뽕을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제 짬뽕전문점에 갔을 때 동료가 하는 걱정의 말을 뒤로하고 기고만장하게 짬뽕을 주문했다. 어느 정도 맵냐고 했더니 그냥 신라면 정도라는 말에 그 정도면 좀 매울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제는 스스로도 자신감이 좀 있었던지라 고추모양이 두 개 그려져 있는 해물 짬뽕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푸짐한 양의 해물과 야채가 올라간 짬뽕이 나왔다. 진한 붉은색의 짬뽕. 살짝 탄 듯이 볶은 국물맛과 싱싱한 해산물. 국물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몸이 더워지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든 것도 잠시, 조금 지나자 속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먹었을 때는 맛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먹었는데 속이 점점 더 불편해져 갔다. 결국 야채와 면 조금 건져 먹었을 뿐인데 속이 너무나 불편해져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앉아있었다. 동료가 몸이 안 좋냐고 물어왔을 땐 이미 대답하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집에 바래다 주겠다는 동료의 말에 차갑고 건조하게 괜찮다고 하고 집으로 왔다.


비린내가 나는 생수를 던져버리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콜라를 꺼내 마셨다. 작은 캔 하나를 다 마셨을 때는 속이 다 시원해지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듯 했으나 곧  몸이 앞뒤로 꺾일 정도로 장이 뒤틀리며 아파왔다. 너무나 화가 나서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한 동료에게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바닥을 기어 다녔다. 약상자에서 장이 뒤틀릴 때 먹으라고 처방받은 짜 먹는 약을 하나 짜서 먹고 십여분을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다. 콜라 따위 마시지 않았으면 더 빨리 좋아졌을 텐데 하는 생각 따위를 할 즈음에서야 나아지고 있었다. 이미 지각임을 깨달은 나는 겨우 편안해지는 속에 다시 커피를 부어 넣으면서 머리를 깨우고 있었다. 악순환.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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