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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06. 2023

창문여는 청국장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한 번째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있는데 이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직도 덜 빠진 약기운에 헤롱거리며 무슨 냄새인지 한참을 맡아보니 어제저녁에 끓여 먹은 된장찌개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밤새 뒤치다꺼리며 수십 번을 이불을 썼다 벘었다 했었는데 아침에서야 이 냄새를 맡다니 요즘 비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불을 개다 말고 전부 걷어서 세탁통에 넣었다. 내 옷들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옷방으로 가서 하나둘씩 꺼내어 냄새를 맡아봤지만 막힌 코로는 이제 더 이상 아무 구분이 안 가 제일 안쪽에 있었던 옷을 골라 꺼내어 소파 위에 올려놓고 나머지들을 전부 들고 세탁실로 갔다. 이불을 전부 걷어서 세탁기에 넣은 게 10여분 전일 텐데 그걸 기억 못 하고 빨래할 옷들을 가지고 오다니 참 한심한 기억력이다.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옷들은 그냥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빨래를 돌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지금 빨래를 돌리고 퇴근하고 나서 건조기를 돌리면 딱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돌리지 못하고 사과 한 개만 깎아 먹고 집을 나왔다.


지하철에서도 냄새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냄새를 못 맡기를 바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싶은데도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있는 음식들이 있다. 중국의 취두부, 일본의 낫또, 한국의 청국장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발효를 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 것인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것이 아니라면 불호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고깃집에서 구색 갖추기용으로 파는 청국장외에는 파는 곳이 별로 없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청국장만 파는 집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서 청국장을 만들던 때가 생각나는데 완전하진 않고 파편적인 기억들만 있다. 아랫목 이불에 덥혀있는 콩이라던가 볏짚 같은 것들. 볏짚에 있는 고초균이라는 것에 의해 발효가 된다고 하는데 요즘은 볏짚 없이 아파트에서도 만든다고 하니 뭐가 진실인가 궁금하다.

 

우리 가족들은 냄새 때문에 청국장을 안 좋아했는데 유달리 청국장의 콩을 좋아했던 나 때문에 자주 끓여 먹었다. 자작하게 끓여진 청국장 바닥에 깔린 콩들을 긁어서 신김치와 먹곤 했다. 어린 나이에 청국장을 좋아하는 게 신기했는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들이 자주 웃으셨던 기억이 있다.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는 당연히 청국장을 만들 수가 없으니 집에서는 먹을 수가 없고 가끔 고깃집에서 사이드메뉴로 있으면 시키곤 했는데 뭔가 항상 부족한 맛이었다. 덜 끈적이고 냄새도 덜하고 그냥 된장국이 조금 눅진해진 것 같은 느낌만 있을 뿐이라 점점 청국장을 시키는 일이 줄어들었다. 한때 건강식 열풍이 불어 마트마다 다양한 청국장이 일이분씩 소분포장되어 판매가 된 적이 있었다. 호기심에 끓여 먹어보았지만 심심한 것이 내가 아는 그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 최근까지 청국장을 먹을 일이 없었는데 회사 동료가 뜬금없이 청국장을 좋아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자료를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떡하니 나타나 앞뒤 맥락 없이 청국장 얘기를 하니 회사업무이야기인지 개인적인 이야기인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돼서 멍하니 있었다. 내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니 자기네 집에서 청국장을 만들었는데 나보고 청국장을 좋아하면 갖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조금 어이가 없어 좋아하긴 하는데요 하며 말을 흐렸는데 자기는 청국장 냄새가 너무 싫은데 집에서 청국장을 많이 만들어서 곤욕스럽다는 것이었다. 소분해서 냉동한 거라 아이스박스에 담아 우리 집에 까지 가져다주겠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른다. 사실 회사에서 누구와도 사적인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함께 밥을 먹게 되었을 때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전부인 관계들이었다. 그 사람은 우리 집이 어딘지 알고 있었나 본데 그건 그렇다 해도 왜 내게 청국장을 준다고 할까 궁금했다. 우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친하다고 해도 청국장 같이 집에서 만든 발효음식을 나눠 먹을 정도의 사이면 피붙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에게요"


내가 고깃집에서 청국장을 시키는 것을 봐서 청국장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예민한 사람이다. 난 그 사람이 회식 때 뭘 먹는지는 고사하고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맙다기보다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국 어버버 하는 사이에 확실히 거절을 못해 결국 청국장을 받기로 했다.

퇴근 후 집에서 긴장을 하면서 기다렸더니 속이 불편하고 식은땀이 났다. 아니 청국장이 뭐라고 단칼에 거절을 못하고 받게 된 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전화로 약속을 취소할 만큼 뻔뻔하지도 못한 나는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며 옷도 못 갈아입고 가장 불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아파트후문 옆에서 서로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받은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올라와 열어보니 꽁꽁 언 청국장이 주먹만 하게 소분되어 10개 정도 들어 있었다. 한 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었다. 


사실 내색은 안 했지만 은연중에 기대를 했었는지 집에 오는 길에 양파, 두부, 호박 등등 재료를 사 왔다. 아침에는 된장국냄새에 기겁을 해서 난리를 피우다가 퇴근할 때는 청국장재료를 사 오는 내 마음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양파, 두부와 호박을 잘게 썰고 신김치를 꺼내 그릇에 담아 가위로 잘게 잘라준다. 쌀뜬 물을 넣은 작은 냄비를 가스불위에 올리고 된장 조금을 풀어준다.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부, 양파와 호박을 넣고 조금 더 끓여준 후 신김치 조금과 청국장을 넣고  풀어준다. 청국장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이런 냄새는 정말 오랜만이다. 냄새가 밸까 봐 급히 환기를 켜고 방문을 다 닫고 옷들을 치운다. 다 끓인 청국장을 식탁에 올리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본다. 자작한 국물에 부서진 콩들이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청국장이다. 꾸덕꾸덕한 콩들의 향현. 밥 한 그릇을 금방 비워내고 슬슬 배가 부르니 집에 냄새가 안 빠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청국장을 받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얼떨떨하다. 내가 의도하여 마음을 연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의도한 것도 아니지만 자기들 맘대로 내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사람은 왔가갔다 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고 나만 그렇게 생각할 확률이 크다. 내일 그 사람은 어제와 같이 나와 전혀 친하지 않은 그 사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쪽에서 이 걸 빌미로 친근하게 다가갈 리도 없고(그럴 자신도 없고) 그 사람도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청국장 때문에 공연히 내 마음만 조금 열린 것 같아 불안하다. 기대한 것은 청국장만이 아니었나 보다. 내일 고맙다고 인사할 때 표정이 어색하지 않게 잘 지어져야 할 텐데, 청국장은 고맙지만 난 여전히 그대로라는 얼굴을 가져야 할 텐데 자신이 없다. 가로등이 켜진 집 앞 대로변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창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집안에는 알 수 없는 냄새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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