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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Mar 13. 2024

외로운 감자고로케씨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예순여섯 번째

점점 혼자 점심을 먹는 날들이 늘어난다. 예전 회사에서는 팀장이나 리더급이랑 항상 다 같이 밥을 먹는 게 대부분이었고 따로 먹으려면 미리 허락을 구하곤 했다. 당연히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대부분 또래끼리 밥을 먹는다. 이제 나와 나이가 비슷한 세대는 평사원으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안 남은 동세대는 대부분 팀장이나 리더가 되었다. 우리 팀에서는 나와 팀장만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팀장이 있을 때는 몇몇 팀원들과 같이 먹기도 하지만 팀장이 없는 날에는 아무도 나에게 같이 점심을 먹기를 권유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더욱 그렇다. 무슨 이야기가 돌은 건 분명하다.


오늘 같이 팀장이 없는 날에는 점심시간 때가 되어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다 밥 먹으러 나가고 나만 남아있다. 회사들이 잔뜩 몰려 있는 이 지역에서 혼자서 밥 먹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회사 단지다 보니 저녁장사는 잘 안되고 대부분 점심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많은 고객을 회전시키고 한번 받을 때마다 테이블을 꽉 채워야 하니 혼자 밥 먹으러 온 손님이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는 날에는 바테이블이 있어 한 사람씩 앉을 수 있는 일식집이나 정말 장사 안 되는 식당에 가게 된다.


오늘은 일식집에 가려고 몇 군데 들렸지만 이미 대기줄들이 있어 쉬워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없는 식당으로 가야 했다. 자주 가는 사람 없는 한식뷔페가 있다. 지하 1층에 있고 테이블이 많은 것에 비하면 항상 사람이 없다. 그곳이 꽉 찬 걸 본 적이 없다. 반찬은 보통 4~5가지, 메인으로 고기반찬이 한 가지씩은 나올 정도로 메뉴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서 이 정도면 안 먹을 이유가 없는 거 아냐 싶지만 한입 먹어보면 왜 이곳에 사람이 없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낡은 철제 입구를 지나 우중충한 실내로 들어가면 몇십 명은 한꺼번에 앉아서 밥을 먹을 만한 큰 공간에 십여 명이 식판에 떠온 밥을 먹고 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날 바라보는 시건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조차 이방인이다. 눈이 마주칠까 애써 시선을 다른쪽에 고정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한쪽에 주방이 있고 그 앞으로 반찬과 국 등이 있는 테이블이 있다. 식판을 하나 들고 천천히 둘러보니 오늘 메인 요리는 오징어 볶음인 것 같다. 오징어볶음, 김치, 무말랭이 등등이 있다.


그리고 고로케. 냉동제품을 그냥 튀겼을게 뻔한 감자고로케가 반찬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밥반찬으로 고로케가 어울리지도 않고 이런 시판 고로케가 후식으로 먹을 반큼 맛있지도 않기에 대부분이 남아있었다. 오징어볶음과 다른 반찬들은 그래도 양이 줄어 있었는데 감자고로케만은 처음 내온 그 상태 그대로였다. 안쓰러웠다. 수제고로케처럼 귀하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오징어볶음처럼 반찬으로 제격도 아닌 감자고로케가 안쓰러워 몇 개를 담았다. 밥을 먹으면서 한 개를 먹었는데 입안에서 흐물흐물하게 부서져버린다. 기름에 튀긴 게 아니라 찜통에 삶은 고로케 맛이다. 그렇구나. 역시 이유가 있다. 선택받지 못하는 건 이유가 있다.


나랑 비슷할까?


사람들은 나와 있는 시간이 재미가 없어 점점 멀어지는 거겠지? 오늘은 다를지도 몰라하고 용기를 내서 손을 뻗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예외 없이 그들의 안 좋은 기대를 백 퍼센트 충족시킬 것이다. 애를 쓰며 마음을 꽉 잡고 상대방말에 엄청 호응하는 척하면서 앉아 있을 때 아마도 나의 얼굴은 미소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사람들 속에 머물 때의 모든 노력들이 비굴한 몸짓들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면 진짜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과 있는 게 싫으면서도 이렇게 내 의지가 아닌 상태로 혼자 버려져있으면 눈물이 날 듯 서럽다. 혼자 있는 게 편하면서도 남겨지면 견디지 못한다.


자기 연민이 안 좋은 걸 알고 있다. 억지로 생각을 멈추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로케 때문에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 남은 고로케를 국그릇에 모아서 음식물 분리수거통에 넣어 버렸다. 회사로 다시 들어갈 때는 기분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회사 주변을 한참 걸어 다녔다. 수많은 회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결국 회사 아래층 화장실에서 조용히 울고 말았다. 눈물이 나는 날에는 참지 말고 그냥 울면 된다. 다만 들키지 않게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하자.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들려왔다. 난 자리에 앉아 아주 모처럼 점심에 먹는 약을 꺼내어 먹고 업무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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