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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Nov 26. 2023

새로 만난 닭갈비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서른다섯 번째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하고 사과를 먹었다. 아침약은 안 먹고 대신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신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습관을 더욱 엄격히 지켜가려고 하고 있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하루가 아니라 나의 하루에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조금 더 단단히 붙들어 매도록 일상을 갈고 닦는다. 아무 연락이 없는 날도, 하루 종일 같이 있는 날도 온건히 나의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까지 두 시간이 남았지만 월요일인지라 빨리 집에서 나왔다.


점심시간에 사람들과 식당을 가는데 한 닭갈비 집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만 해도 오픈 기념행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벌써 폐점을 했다. 요즘은 닭갈비처럼 여럿이서 나눠 먹는 음식이 인기가 좋은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1인분만 시켜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전골이나, 탕, 구이 종류들은 대부분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한데 최근에는 1인분씩 나오는 곳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하지만 닭갈비를 1인분만 파는 가게를 본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는 대부분 혼밥이 가능한 일본의 식당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식권자판기에서 주문을 하고 바테이블에 앉으면 바로 음식을 조리해서 가져다준다. 키오스크도 들어오고 1인석이나 바테이블석이 조금씩 생기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안 그런 곳이 더 많다. 닭갈비도 여전히 그런 음식이다. 다른 고기에 비해 속이 편해서 자주 먹는 닭고기인데 닭볶음탕이나 닭갈비나 여전히 2인분씩만 가능한 식당이 대부분이라 먹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양이 많은 사람들은 2인분을 시켜서 혼자 먹는 다고는 하는데 난 1인분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라 그런 방법은 불가능하다. 티비에서 보니 동네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서 같이 밥 먹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는 하지만 젊은 사람들 이야기인지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난번에는 닭갈비가 너무 먹고 싶어서 동네에 있는 24시간 밀키트 집에서 닭갈비를 사다가 먹은 적이 있었다. 양도 많고 맛도 나쁘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인지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집 근처 지하철역 상가 2층에는오래된 닭갈비 집이 하나 있다. 오다가다 지나가면서 언제 가보나 고민한 할 뿐 갈 기회가 생기기 않았다. 들어가서 2인분을 시킬까 아니면 2인분을 포장해 달라고 할까 등등 볼 때마다 뭔가를 고민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난 문턱 전압이 높은 편이다. 기기를 가동하려면 당연히 전기가 필요한데 파워가 천천히 증가하면 기기가 작동하는 게 아니라 기기가 작동할 만큼 충분한 파워로 올라와야 그때부터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한 발짝씩 천천히 시작하는 게 아니라 버티고 버티다 힘에 밀려 갑자기 시작하게 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월요일은 일주일에서 가장 힘든 날이다. 지난주에 같이 일한 똑같은 사람들이건만 월요일에 만나면 관계가 전부 리셋되는지 어렵기 그지없다. 하루종일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문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함이 끝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기혐오가 찾아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은 아무거나 한다. 생각나면 바로 그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닭갈비 집을 지나쳐 가면서 닭갈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마트에 들려 생닭을 사고 호박, 양배추, 깻잎 등등을 사서 집에 왔다. 닭고기를 물에 씻어내고 야채를 잘게 자르고 양념장을 만든다. 고구마가 없다. 닭갈비에는 고구마가 있어야 하는데 깜빡했다. 어쨌든 닭고기를 양념에 버무린다. 인터넷에서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구우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밥이 다되었다. 집에서 제일 큰 프라이팬을 꺼내 양념된 닭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반정도 익었을 때 야채를 넣어 볶아주고 마지막으로 참기름도 아주 조금 넣어준다. 다 익으면 큰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 위에 깨도 조금 뿌려준다. 윤기 있게 잘 된 밥도 한 공기 퍼온다. 흰쌀밥을 한 수저 먹고 닭갈비를 먹어본다. 역시 파는 것 같은 맛이 안 나고 참기름도 너무 많이 넣었다. 하지만 반찬으로는 먹을 만하다.


시작이 어려울 뿐이지 막상 해보면 할 만한 일이 많다. 요리도, 월요일도 비슷하다.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온통 기름이 튀고 집안에 연기가 가득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다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오늘 하루 종일 그 사람에게 문자 하나 오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단단해 질 것이다. 단단해 질 것이다. 나의 마음은 게속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벌써 일주일이 다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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