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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Nov 22. 2023

살아남은 돌솥밥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서른네 번째

출장을 갈 때 가서 뭘 먹을지 오랫동안 고민한다. 요즘 들어서는 출장 가서 할 일보다 뭘 먹을지 고르는 시간이 더 길다. 일은 점점 익숙해져서 매번 똑같은 루틴으로 돌아가지만 식당은 끝없이 새로 오픈하고 망한다.


자주 가지 않는 지역에 출장을 갈 때는 주로 검색사이트에서 뭘 먹을지 찾곤 한다. 회사 동료들은 sns에서 주로 찾는데 그런 곳들은 너무 유명해서 오래 기다리기 일쑤이다. 그리고 사진에 비해 맛이 없거나 양이 너무 적은 경우가 많아 언제부터인지 sns에 나오는 유명한 맛집들은 잘 가지 않는다. 노년답게 검색엔진에 '맛집' 이렇게 입력해서 찾아간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가게들을 제외 한다. 평점이 만점으로 도배된 가게도 역시 제외한다. 사진이 너무 잘 나온 사이트도 제외한다. 그러다 보면 오래된 가게 위주로 남게 된다. 몇십 년 이상 된 가게들은 그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가게를 찾는데 은근 실패하지 않는다. 물론 메뉴들도 탕, 찌개, 볶음 같이 트렌디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출장에서도 그런 가게들 위주로 골랐다. 그런데 같이 가는 동료는 가고 싶은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가는 출장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시시각각 그 사람을 신경 쓰고 나 자신이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식당 따위에 신경 쓸 틈이 없다. 그렇게 해서 이번 출장은 그 동료의 추천대로 식당을 다녔다. 그런데 정말 사진뿐인 집들이 너무 많았다. 양도 적고 맛도 별로였다.


“과장님은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


회사동료는 두번 연속으로 식당이 실패하자 마지막 한 끼는 내게 선택하라고 했다. 당황했다. 생각지 못한 제안에 몸이 버벅거린다.


허겁지겁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점심 이후에 바로 있는 미팅은 어느새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분명 중요한 미팅이었던 것 같은데. 회사 동료가 운전하는 사이 가게 하나를 찾았다. 돌솥밥 식당이었다. 가게는 이십 년쯤 되어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리뷰가 있었다. 여기다 싶어 네비에 위치를 입력한다


“아 그리로 가시게요? “


그 한마디로 별로 내켜하지 않는 동료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삼십 분 정도 운전 후에 도착한 곳은 정말 오래돼 보이는 식당이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차들이 반정도 주차되어 있었다.


식당에서 들어서니 유명인들의 사인이 벽면에 가득 붙어 있었다. 역시 실패하지 않았다. 메뉴도 단출해서 돌솥밥류가 전부였다. 난 전복돌솥밥을 시켰다. 주문 후 바로 만들기 때문에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런 집은 실패 확률이 적다.


15분 정도 후에 돌솥밥이 나왔다.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는 돌솥의 뚜껑을 열자 얆게 썰린 전복이 밥 위에  듬성듬성 얹혀 있었다. 종업원은 옆에 있는 마가린을 넣어서 비벼 먹으라고 했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동료와 나는 마가린을 한수저씩 떠서 솥밥에 넣고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치지직하며 수분이 돌솥 때문에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고소하니 맛있네요”


동료가 한입 먹더니 맛있다며 씩 웃는다. 다행이다 싶어 마음 놓고 나도 한 수저 떠먹었는데 너무 느끼했다. 돌솥의 고소한 맛은 없고 마가린의 기름맛만 가득했다. 밥은 왜 이리 딱딱한 걸까. 실패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테이블에서 생기 없이 밥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동료는 이게 정말 맛있는 걸까? 처음에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묵묵히 밥을 먹고 있다. 예의상 한 말이구나.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그냥 살아남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선택받으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겨우 살아남은 가게이다. 꾸역꾸역 살아온 것. 어쩌면 이리도 나와 같은지. 나도 그렇게 사람들의 실수에 기대어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나 자신만이라도 내 선택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믿고 싶다. 난 돌솥밥을 바닥까지 긁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돌솥밥 정말 잘하네요 “


언제나 그렇듯 믿음은 진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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