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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Dec 17. 2023

누군가의 핫도그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마흔한 번째

빼곡한 상가주택사이 빈 공간에 차를 겨우 세울 수 있었다. 서둘러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주인을 보자마자 감자핫도그 하나를 주문한다. 튀겨야 돼서 오분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창가의 빈 테이블에 앉는다. 그제야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본다. 주인이 핫도그를 튀기는 뒷벽에는 치즈, 오리지널, 감자 핫도그 등등 핫도그가 메인으로 적힌 커다란 메뉴판이 붙어 있다.


얼마 전부터 티브이에서 핫도그를 파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평소 티브이를 집중해서 보는 편은 아니다. 책을 보거나 밥을 먹을 때 적막하지 않게 백그라운드로 조용히 틀어놓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보는 프로그램도 없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핫도그를 만들어 파는 그 프로그램은 눈에 들어왔다. 기름에 푹 담가서 튀긴 후 설탕에 굴리고 케첩을 뿌려주는 그런 핫도그 말이다. 그 추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갑자기 핫도그가 먹고 싶어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앞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초등학교 앞에는 분식집이 있으니까. 그런데 분식집이 없었다. 심지어 문방구도 무인 문방구였다.


못 먹게 되면 더 먹고 싶어지는 법이라 집에 올 때 슈퍼에 들려 핫도그를 사 왔다. 기름에 튀길 필요 없이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먹으면 된다고 해서 한봉다리를 사 왔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나서 케첩을 뿌려 먹었는데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이 맛은 아니었다. 안에 들어있는 햄도 고급햄 같고 빵도 깔끔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주변에 옛날식 핫도그를 파는 곳을 찾아보았다. 한동안 핫도그프랜차이즈가 유행했었는데 웬일인지 다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가게를 겨우 찾았다. 집에서 거리가 좀 돼서 차를 타고 와야 했다. 핫도그 하나 때문에 이래야 하나 싶었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른 추억 하나 때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분이 지났을까 싶었는데 다 되었다고 주인이 핫도그를 먹기 좋게 포장지로 손잡이를 싸서 주었다. 네모난 감자가 핫도그 겉면에 빼곡히 붙어 있고 그 위에 설탕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케쳡을 그 위에 슥슥 뿌려서 먹기 시작했다. 그래 이 기름맛이다. 기름에 푹 담궈진 맛. 그런데 한입 베어 물자 소시지가 바로 씹혔다. 어렸을 때 먹던 핫도그는 그 안의 소시지가 정말 손가락 한마디정도 크기로 작게 들어있었다. 그에 비해 반죽은 엄청 커서 한참을 먹어야 소시지가 나왔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배가 불렀다. 처음으로 기억나는 핫도그 가격은 50원이다. 매일 엄마한테 백 원만 달라고 해서 핫도그를 사 먹으러 갔다. 지금 이 감자핫도그는 2500원이다. 무려 50배가 오른 것이지만 지금 물가를 생각하면 비싸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때와는 달리 소시지도 크고 고급스러우며 빵도 적당한 크기이다. 나무랄 데 없다. 겉에 붙은 감자튀김도 바삭하니 맛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감자핫도그를 먹어본 적이 없다. 감자 핫도그는 나중에 서울에 와서 처음 먹었다. 동대문에서 어떤 외국인과 같이 먹었는데 왜 거기까지 가서 그걸 먹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내가 왜 감자핫도그를 지금 먹고 있는지는 알겠다. 내가 보았던 티브이프로그램에서는 한국연예인들이 외국에서 현지인들에게 감자핫도그를 팔고 있었고 외국인들은 너무 맛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먹었다. 내가 기억난 것은 어떤 외국인과 동대문에서 먹은 감자 핫도그인 것이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산 그 감자핫도그는 오래돼서 기름에 쩔은 냄새가 나고 빵도 퍽퍽해서 인상을 찌푸리며 먹고 있었는데 정말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계속 치켜올리던 그 친구가 이제야 기억이 났다. 한국에 처음 와서, 그가 경험하는 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었던 친구였다.


나도 하루하루 새롭고 신기하게 살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익숙하고 새로 다가올 것에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 핫도그가 먹고 싶었던 건지 그 친구의 추억이 그리운 건지 모르겠다. 내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인 줄 알았는데 그의 기억이었구나 생각하니 살짝 씁쓸해졌다. 핫도그를 다 먹고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왔다. 누구의 기억이든 무엇에 대한 추억이든 지금 나에게 하루를 채운 좋은 기억이다.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고 자주 생각나길 바랄 뿐이다. 무엇이 되었든 하루 매 순간 좋은 걸로 채워야 불안감이 현재를 잠식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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