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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Dec 20. 2023

까다로운 수제비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마흔두 번째

신경이 덜 예민한 사람들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내가 신경이 예민함을 남들을 사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반응 하나하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지쳐갔다.


7년간 약을 먹으면서 내가 무뎌지길 바랐지만 거의 효과가 없었다. 멍해지는 것도 잠시일 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온 세상의 것들이 제각각 의미를 가지고 내가 다가온다. 아무런 의미 없는 다가옴이란 없고 그렇게 받아주지도 못한다. 결국 이 악순환은 약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약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무 소용도 없다고, 그런 핑계로 아침약을 안 먹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그냥 아침부터 예민하고 성마른 내가 되었다.


점심에 다 같이 칼국수집에 갔다. 칼국수보다는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수제비를 시켰다. 그 사람은 여기 칼국수 전문점이라 수제비는 별로 일 텐데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누구에게 얘기하는 걸까. 그 사람의 눈은 나를 스치고 가게 구석으로 가버렸다. 나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던 그가 벌써 그립다.


"저 수제비 아무거나 잘 먹어요"


거짓말이다. 난 수제비를 많이 가린다. 어렸을 때 먹던,  멸치 육수에 손으로 뜯어 만든 수제비 같은 게 나의 기준점이다. 팔팔 끓인 멸치 육수에 손으로 최대한 얇게 반죽을 뜯어 넣고 푹 끓여서 만든 수제비를 커서 본 적이 없다. 손수제비라고 이름 붙인 수없이 많은 가게들은 이름만 손수제비일 뿐 실제로는 칼국수 면을 만들기 위해 만든 얇게 펴진 반죽을 떼어내서 넣거나 이미 만들어져 파는 손수제비를 삶아서 내어준다.


칼국수와 동시에 내 수제비가 나왔다. 수제비와 칼국수가 동시에 나온다는 건 수제비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다들 호호 불어 먹기 시작한다. 나도 한입 떠먹었는데 역시나 그냥 칼국수집에서 파는 수제비이다. 너무 익숙해서 이젠 좋지도 싫지도 않다. 그 사람을 바라보니 연신 맛있다며 추천한 동료에게 칭찬을 아끼고 있지 않고 있다. 나 역시 수제비도 맛있다고 거들었으나 공감대 없는 음식선정으로 인해 잠깐의 침묵을 불렀을 뿐이다. 먹는 둥 마는 둥 나왔더니 역시나 아쉽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맛은 그저 과거에만 있어야 하는데 자꾸 현실로 나와 삶을 힘들게 한다.


별다른 약속이 없던 나는 천천히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저녁에 같이 갈 때가 있어요. 7시에 역 3번 출구에서 봬요.


요즘은 퇴근들이 다 빠르다 7시 정도 되면 역 주변에는 우리만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은 날 보더니 자기가 맛있는 수제비 집을 찾았으니 가자는 것이었다. 점심에 수제비를 먹었는데 저녁에도 수제비를 먹어야 하다니. 조금 센스가 부족한 듯싶지만 그래도 오후 내내 날 생각해서 식당을 찾았을 그 사람을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하철로 30분 정도 가서 내린 후 시장통에 있는 허름한 칼국수 집을 찾았다. 테이블은 5개가 전부였고 그나마 두 개는 2인용 테이블이었다. 8시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한자리 빼고는 모두 차 있었다. 메뉴는 정말 단출했다. 칼국수, 수제비, 만두, 공깃밥. 난 당연히 수제비를 시켰고 그 사람들로 같이 수제비를 시키고 만두도  추가로 시켰다.


곧바로 수제비가 나왔다. 진한 멸치 육수 냄새, 같이 삶아져서 돌아다니는 몇 조각의 호박, 그리고 손으로 뜯은 것처럼 두께가 일정하지 않은 수제비가 들어 있었다. 한입 먹었을 때 이게 내가 찾던 수제비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멸치 육수에 손으로 반죽을 뜯어 만든 단순한 수제비. 그 사람은 먹지도 않고 계속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요? 맛있죠? 이게 맞죠?


"네 맞아요. 너무 좋아요"


수제비가? 아님 그 사람이? 이제 사랑은 모르겠다. 내 옆에만 있어줘도 누구나 사랑했다. 두근거린다고 모두 사랑은 아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떨어질까 봐 조심히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 사람은 땀을 흘리며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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