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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Dec 13. 2023

신경쓰이는 가정집 카레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마흔 번째

요즘 다시 잠을 잘 못 자기 시작해서 상당히 날카로워졌다.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같이 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하 호호 즐겁다가 그 사람이 먼저 잠이 들면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을 혼자 견디어야 한다.


사랑하는 그 숨소리,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나를 잠들지 못하는 현실로 불러온다. 몰래 약을 먹고 잠들어도 그 사람의 기척에 다시 깨어나 혹여나 나의 기척으로 그 사람이 잠들지 못할까 움직이지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다. 가끔 자리에서 나와 소파에서 잠든 날 아침이면 서운한 얼굴로 날 맞이하는 그 얼굴이 신경 쓰여 침대에서 나가지 못한다.


그 사람이 잠깐 마트에 간 사이 날카롭게 찢어지고 있던 나의 신경을 조금씩 이어 붙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 사람이 돌아와서 다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그 사람은 카레가 먹고 싶다고 인스턴트 카레블럭을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일본식 숙성 카레인데 블록만 넣으면 카레가 된다고 나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고기는, 호박은, 감자는, 당근은, 양파는?이라고 묻고 싶었지만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입을 닫고 웃으며 재료를 받았다.


"음 카레 먹고 싶었는데 잘되었어요"


그 사람은 웃으며 식탁테이블에 앉았다. 난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냉장실에서 당근 반토막, 냉동실에서 얼어있는 찌개용 돼지고기, 블록 모양으로 썰은 감자와 호박, 창고에서 고구마 한 개, 양파 한 개를 찾아냈다. 모든 재료를 꺼내어서 씻고 블록 모양으로 잘게 다듬었다. 그래도 다 모아놓고 보니 재료가 꽤 되었다. 재료가 없다고 하고 나가서 사 먹을 걸 그랬나. 어떤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나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 하는 건 좋지 않다. 문제들은 점점 많아질테고 나는 슈퍼맨이 아니므로 해결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기엔 각각의 역할이 이미 정해져 버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오늘은 타이밍을 놓쳤다.


큰 그릇에 식용유를 두르고 고기를 볶기 시작했다. 연기와 냄새가 나자 그 사람은 뒤에 와서 냄비 안을 들여다보면서 싱글벙글했다


"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 냄새가 나요"


기름이 튀니까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얘기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고 나서 야채를 넣고 볶기 시작했다.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팔이 뻐근해질 때까지 볶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분 때문에 냄비가 타버린다. 반쯤 익었다고 생각했을 때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전까지 밥을 하고 반찬을 꺼내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카레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 서둘러 준비하는 날 보며 도와 줄일 없냐고 묻는 그에게 식탁청소와 수저 그릇 세팅등을 부탁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카레를 넣는다. 여기서부터 약불에 계속 잘 저어주지 않으면 냄비에 시켜멓게 탄 카레를 먹게 된다. 약불로 바꾸고 타지 않게 계속 저어준다. 모든 야채가 부드럽게 으깨지기 전까지 끓여줘야 맛있는 카레가 된다. 십여분을 그렇게 저어주고 나서 겨우 카레가 완성되었다. 물만 넣고 끓이면 카레가 될 것 같지만 사실 카레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계란 프라이를 살짝 튀기듯이 해서 밥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카레를 부어준다. 테이블 앞에 있는 그와 내 자리에 각각 하나씩 올려놓는다. 한입 떠먹은 그가 정말 맛있다고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정말 맛있어요. 진짜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난 그의 엄마가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어머니와의 추억은 어머니와 되새기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가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사라졌다. 오늘 나의 신경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그래도 달달한 카레를 한입 먹으니 조금 진정이 되기 시작한다. 다 먹고 나니 그 사람은 설거지를 하겠다고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9시가 조금 넘었다. 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하는 뒷모습이 조금은 귀엽기도 하다.


어제 그 사람이 가져온 커다란 가방이 다시 바닥에 열려있다. 옷가지와 세면도구들이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오늘도 그 사람은 집에 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혼자 있지 않아도 되는 밤에 안심하면서도 결국 혼자 지새울 밤에 대해 너무나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노랫소리가 내 신경을 다시 긁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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