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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an 10. 2024

누군가의 약과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마흔여덟 번째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뒷머리가 저릿저릿하다. 어깨도 뭉치고 몸을 일으키기 어렵다. 10시간 이상 누워 있었지만 계속 뒤척인 탓에 실제 잔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월요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니.


사과 반개를 깎아먹고 테이블에 잠시 앉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까 걱정이 되어 일요일에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틀린 말이다. 월요일은 반드시 오고 난 회사 사람들과 어설픈 아침 인사와 전체 회의를 해야 한다. 생각만해도 어깨가 다시 뭉쳐온다. 아침약을 꺼내어 물과 함께 먹는다. 오랫만에 먹는 아침약. 그동안 잘 견뎌냈다 했지만 최근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니. 누군가와 같이 있는,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그 세상은 목성의 대기처럼 불안하고 위험하게 요동친다. 먹고나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런 일요일에는 어떤 것도 집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감만 쌓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밖에 나가는 편이다. 동네 아파트 단지를 조금 지나면 상가주택들이 빼곡히 있다. 아파트를 지나 작은 호수를 건너고 상가주택들을 지나서 돌아오면 한시간반에서 두시간 정도 걸린다.


오늘도 아무생각을 안하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그 사람은 어제부터 왜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일까. 머리속에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가득하다. 자꾸만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빨리 이 코스를 완주해야겠다는 조급증이 드는 것이다. 집에가서 연락을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그럴때마다 멈춰서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천천히 걸음을 시작한다.


상가주택에는 커피숍들이 정말 많다. 커피숍마다 손님들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많은 커피숍들이 유지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지 얼마 안된 커피숍 앞으로 지나가는데 수제 약과 판매중이라고 써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약과라니 요즘 누가 약과를 먹기는 하는 걸까? 지나치게 달고 기름이 많아 느끼한 약과는 어릴때에도 차례상에서 내려오면 아무도 먹지 않아 버려지곤 했다. 유리창안으로 베이커리처럼 세련되게 꾸며진 가게안이 보인다. 다른 일과는 달리 먹는 일에는 조금쯤 용기를 내는 일이 많은 나는 궁금증을 못이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중앙에 여느 베이커리카페처럼 빵과 디저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약과가 있었다. 내가 아는 약과보다 살짝 큰 약과가 두개에 5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연락이 드문 그사람은 약과를 좋아한다. 하긴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음식이 있나 싶다. 지난번 모처럼 내려간 아버지의 제사에서 나혼자만 약과를 챙기고 있었다. 항상 아무도 안가져 가는 약과를 내가 싸가지고 가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무슨일인가 궁금해 하셨지만 그냥 최근에 내가 먹고 싶어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약과와 커피를 마시며 으음 맛있어 하면서 좋아한다. 그래서 모처럼 아버지 제사에 갈 마음이 생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약과 두개를 사서 봉다리에 담아 집으로 왔다. 집에서 보니 약과가 꽤 커보였다. 약과를 테이블에 놓고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었다. 그 사람한테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혹시나 핸드폰이 꺼져있나 여러번 살펴보았다.


음악을 잠깐 들은 것 같은데 벌써 저녁이 되어 버렸다.  기억이 또 없어져 버렸다. 아니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아무런 일도 없었던 오후가 지나갔다.


어두 컴컴한 집안의 조명을 켰다. 그사람은 오는 걸까? 아니 그사람은 실제로 있는 걸까? 약과 한개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느끼하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고 이렇게 맛있는 약과가 있다니 신기할 정도이다. 맛있게 달달한 약과를 먹고있자니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캡슐 커피 한개를 꺼내 아메리카노 한잔을 만들었다. 어느새 두번째 약과를 꺼내서 먹고 있었다. 아침에 사과 반개를 먹은 이후로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플만 하다. 달달한 약과와 씁씁할 커피가 너무 잘 어울린다. 약과도 다 먹고 커피도 다 마셔버렸다. 그 사람을 위해 남겨놨어야 하는데 다 먹어버렸네. 어차피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창밖은 깜깜했고 집안은 너무나 조용하다.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쿵하고 들렸다. 실제 소리인지 내 마음의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라디오는 누가 끈 것일까. 언제 부터 음악이 안나오고 있었지?


약과의 달달함과 커피가 머리를 맑게 만들고 있다. 아마 오늘은 이 커피를 핑계로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왜 잠이오지 않는 걸까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의 밤이 아니라 정확하게 이유가 있는 불면의 밤은 그래도 덜 괴롭다. 지금 아무도 곁에 없는 이유를 알면 덜 외로울까? 아니다 그건 더 괴로울 것 같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음악을 다시 틀었다. 잠시동안 들려오던 음악은 어느덧 제 소리를 감추고 걱정과 미움과 외로움이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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