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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Apr 14. 2024

떡볶이의 뒷모습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일흔다섯 번째

나이을 먹으면서 잊어버리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떡볶이다. 혼자 밥을 먹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사람들을 만나도 격식을 차리게 되니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으려면 대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혼자 삼겹살집에 갈 정도의 마음 정도.


집에서 500m 정도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그 느낌이 뭔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초등학교 앞에 상가가 없어서 그런 거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근처에 반드시 야트막한 상가건물이 있어 그 안에 문방구, 분식집 등이 있었고 조금 뒷골목엔 오락실, 만화방등이 있었다.


그래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를 끝나고 뭘 하는 걸까.


어느 날 그 의문이 풀렸다. 하교시간 근처에 산책을 하다가 우르르 나오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학교 앞에는 다양한 학원에서 온 노란색 미니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우르르라고 하지만 몇십 명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은 각자 버스에 올라타고 떠나버리고 몇몇 아이들만 터덜터덜 길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매일 컵에든 떡볶이와 어묵을 들고 길에서 수다를 떠는 아이들을 봐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나 보다. 분명 티비 드라마나 뉴스에서 본 무언가를 또 현실과 붙여 버렸을 것이다.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버스에 타는 아이들과는 달리 길을 따라 어디론가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묘하게 쓸쓸해 보였다.


갑자기 떡볶이가 너무나 먹고 싶어졌다. 근처에는 가게가 없어 지도를 켜서 분식집을 찾았다. 무려 3km나 떨어진 아파트 상가건물에 있는 분식집을 찾았다. 아직 개발 중인 우리 동네는 길은 반듯반듯한데 버스는 별로 없다. 택시를 타고 가자니 너무 짧은 거리라 핀잔을 받을 것 같았다


걸어가자.


10분 이상을 걷자 어지럽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낮기온이 28도라고 했던가? 아니 29도였던가? 그런데 나는 왜 두꺼운 목폴라 니트와 가디건을 입고 나왔는가.  햇빛이 무수히 쏟아져서 내 몸에 달라붙고 있다. 30분쯤 걸었을 때 난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달라붙은 햇빛들이 주렁주렁 내 몸에 달려 몸무게는 1톤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건설 예정지인 공터들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건물하나, 그늘하나 없는 그곳을 비틀거리며 쉼 없이 걸어 마침내 아파트 상가에 도착했다.


분식점에 들어갔을 때 난 비틀거리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일어서더니 아무 데나 앉으라고 했다. 난 아무 말도 없이 입구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물을 마시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제야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뻥 뚫린 가게 창문 앞에 놓인 네모난 쇠틀안에 자작하게 졸아든 떡볶이가 조금 남아있었고 옆에 있는 동그란 어묵통 위에 어묵들이 대나무 꼬치에 꾀어진 체 올려져 있었다. 메뉴는 떡볶이, 어묵, 튀김, 닭강정... 튀김이랑 닭강정은 어디에 있지?


아주머니가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난 떡볶이 1인분과 어묵 두 개를 시켰다. 아주머니는 작은 접시 같은 그릇에 떡볶이를, 작은 사발에 어묵국물을 담고 어묵 두 개를 담가 가져다주었다. 아직 봄이 분명한데 가게 안은 열기로 가득 차있고 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실수했다


너무 덥고 힘들어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떡볶이도 어묵도 식감만이 남았다. 나의 실수다. 어린 시절 나의 정말 친했던 친구가 분식집 앞에서 혼자 떡볶이를 먹는 것을 보았다. 그날따라 추레한 옷차림으로 혼자서 분식집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왜 날 부르지 않은 걸까? 나는 다가가서 거지같이 길거리에서 혼자 떡볶이를 먹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냥 반가워서 한말이었다. 근데 내 말에 내가 웃겨 깔깔대고 웃었다. 그 친구는 이상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로. 그 친구는 정말 가난했고 난 내가 실수했음을 알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친구는 나무젓가락을 놓고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불러 세워서 미안하다고 했어야 하는데 난 얼어붙어 서있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갑자기 떡볶이가 생각난 건 그 때문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여기에 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는 아주머니의 밥 먹는 소리만 되돌아왔다. 반쯤 먹은 나는 일어서서 아주머니께 돈을 드리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햇빛은 아직도 뜨거웠고 충분히 고통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신호등을 건너 공터 사이로 걸어갔다. 점점 몸이 무거워진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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