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마음, 100개의 요리. 일흔여섯 번째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긴다. 피가 흘러 멈추고 서서히 굳어져서 검게 변하면 딱지가 되어 살 위에 살포시 앉는다
딱지에 대해 사람마다 대하는 방법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떨어질 때까지 놔두지만 어떤 사람은 조그만 틈이 보이면 살살 움직여서 떼어 낸다.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진 딱지 밑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살짝 붉은색일 때도 있다. 태초의 살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조금의 기분 좋음이 있다.
하지만 얼굴에 생긴 상처들은 잘못 떼어내면 곰보가 된다고 해서 난 상처를 그대로 두는 편이다. 어릴 적 곰보를 많이 보아서 그렇게 될까 봐 항상 무서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딱지 잘못 떼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소보로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겉에 다닥다닥 붙은 껍데기는 상처 위에 앉은 딱지처럼 보인다. 오죽했으면 곰보빵이라 불렸을까. 너무 달거나 내용물이 들어있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바게트 같은 것만 사는데 가끔은 소보로가 먹고 싶어 같이 살 때가 있다. 단 빵은 싫어하지만 유일하게 계속 먹는 단 빵 중에 하나가 소보로빵이다. 어렸을 때는 그 껍데기만 떼어먹고 빵은 안 먹기도 해서 혼나곤 했다. 껍데기가 떼어지고 남은 퍽퍽한 빵은 부모님이 주로 드셨다. 집은 가난해졌지만 세상은 배고픈 시절을 지나 풍요로 가는 시절이었다. 먹는 것을 남길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 있는 빵가게에는 소보로가 천 원이다. 유명 체인점보다 작고 바삭함은 덜하지만 천 원짜리 소보로빵은 희귀하다. 그래서 오늘은 큰 마음먹고 만원 어치를 사서 가방에 넣고 집으로 왔다. 크림이나 과일, 잼 등등 화려한 토핑과 내용물이 들어간 빵들은 그 세네배의 값을 받지만 곰보빵은 여전히 거기 서있다. 얼마나 많은 빵이 고급스럽게 변하였던가. 이상한 모양이 되고 이상한 것이 추가되고 포장이 달라지고 그들은 결국 빵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될 때도 곰보빵은 비닐봉지 안에서 납작하게 눌려서 여전히 낮은 곳에 머물러 있다.
그 안쓰러움에 10개나 사서 집에 가지고 왔다. 물론 값이 싼 이유가 첫번째이다. 9개쯤은 바로 냉동실로 들어가겠지만, 너무 많이 사서 조금 후회스럽지만 무거운 어깨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달음에 집으로 왔다.
커피하나를 내리고 테이블 위에 앉아 소보로빵의 껍데기를 떼어먹고 있으니 다시 어른이 된 것 같다. 껍데기를 하나씩 떼어먹는다. 딱딱하고 달콤한 소보로의 딱지. 그 밑에는 부드러운 빵이 있다. 이젠 빵을 안 먹는다고 혼내는 사람은 없다. 먹을 것을 남겨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 때문에 부득불 더 남기고 싶었다. 접시 위에 빵만 남아 있다. 그 주변으로 부스러기들이 흩어져있다.
남들 눈에도 이렇게 보이는 걸까. 상처받고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는 그 과정이 낱낱이 보이는 게 아닐까.
심장의 껍데기가 산산이 조각나서 갈라지고 피가 나왔다. 한없이 나올 것 같았던 그 피가 드디어 멈추고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아직은 떼어내면 아프다. 조심스럽게 그 틈을 들여다보지만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더 필요해'
곰보가 된 나의 소보로 심장이 말을 했다.
'조금 더 기다려 딱지가 다 떨어지면 새로운 심장이 될 거야. 지금은 답답하고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지만 곧 새살이 나고 넌 다른 심장을 받게 될 거야'
그래 그때쯤이면 아프지 않게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한밤중에 커피를 마시며 자기 학대를 반복하더라도 시간은 계속 지나고 새살은 날 것이다. 난 새로운 심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만날 것이다. 또 찢어지고 갈라져도 계속 반복해서 그 일을 하게 되겠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못생긴 소보로의 딱지처럼 나는 상처가 나 자신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상처를 얻기 위해 살아간다. 그걸 왜 알게 되었을까. 몰라도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