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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Apr 21. 2024

돌아온 포춘쿠키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일흔일곱 번째

누구나 어린 시절 마음속에 담아둔 요리들이 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TV를 통해 그런 요리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어른이 되었다.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등등 TV속 외국 드라마에서 잘생기고 잘 차려입고 좋은 집에서 살던 그들이 먹던 그럼 음식들. 어릴 적 매번 식탁에 올라오는 멸치, 새우젓, 신김치, 구운 김 등등은 너무나 추례해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잘 사는 나라, 선진국, 부유함에 대한 동경은 그 화면에서 나오는 가장 비루한 상황조차 빛이 나게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이박스에 담아 먹는 중국음식들이었다. 바쁜 화면 속 주인공들은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 누군가 종이박스에 담긴 음식들을 사 오면 젓가락으로 대충 퍼먹다가 바쁜 일이 생기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음식물이 담겨 있는 열린 종이박스들위로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나무젓가락들은 왜 그 시절 내가 먹고 있는 라면의 나무젓가락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멋있었던 걸까. 외국에 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중 하나가 종이박스에 들어 있는 중국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대부분 동료들과 레스토랑에 가거나 밤에는 한식집들을 전전해야 했다. 그 먼 이역만리에서 계속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모처럼 찾아온 대접해야 할 손님이 아니라 본인들이 점점 잊어가는 고향의 맛과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바쁜 일정과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런 마음속의 동경을 점점 잊어버렸다.


LA 출장 중 동료와 같이 밖으로 나왔다가 잠시 혼자 있게 된 적이 있었다. 동료는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보기와는 달리 쇼핑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나는 동행에 선택받지 못하고 주변을 떠돌게 되었다. 좋은 햇살아래 잘 꾸며진 쇼핑거리를 한참을 걷다 보니 잠깐 방향을 잃었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순간 대형 쇼핑몰 건물이 눈에 띄었다. LA의 신의 선물 같은 햇빛 속에서도 저렇게도 음침하고 큰 건물이라니. 나의 우울함은 그 건물의 우울함을 알아보았고 매우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그 쇼핑몰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어두침침한 조명과 군데군데 남아 있는 가게들은 이곳은 위험하니 어서 나가라고 조용히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삶에 대한 나의 무력감은 나를 계속 그 쇼핑몰에 머물게 하였다. 남아 있는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어두운 눈빛들이 내게 꽂혔다.  낡은 가게, 부서지는 눈빛들 사이로 멀리서 밝고 화사한 식당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판다가 그려진 미국식 중식 식당이었다.


홀린듯이 그 앞에 가서야 나는 이곳이 내가 그동안 갈망했던 종이박스에 담아주는 중국음식점임을 알게 되었다. 모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덩치 큰 가게 종업원이 날 바라만 보았다. 무섭게 큰 덩치에 비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매뉴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난 볶음면과 고기볶음 하나를 포장했다. 가게 안에 자리가 텅 비어 있음에도 기어이 포장을 해서 들고 나왔다.


비닐봉지에 담긴 종이박스의 따뜻한 열기를 손에 느끼면서 건물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이곳은 길에 앉아 있기에 위험하다. 그래서 먼 길을 다시 걸어 아까 있었던 밝고 깨끗한 쇼핑 거리로 돌아왔다. 잘 꾸민 사람들이 깨끗한 거리를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난 쓰레기통 옆에 있는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종이박스를 꺼내 열고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렸다. 면은 탄성이 별로 없어 계속 부서졌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굴소스에 볶은 면의 맛. 고기 역시 비슷한 맛이었다. 살짝 질긴 그 고기와 면은 같이 먹으면 상당히 짰다. 조금씩 기분이 우울해졌다.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먹기를 멈추고 종이박스에 젓가락을 꽂아놓은 채로 벤치에 내려놓았다. TV속 주인공들도 이렇게 맛이 없어서 테이블 위에 항상 버리고 나갔던 걸까. 혼자 버려져 있는 내 신세와 종이박스는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한없는 우울감으로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종이박스를 버리려고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과자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매일 보던 포춘쿠키였다. 내 인생의 첫 포춘쿠키를 열어 보았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추구하는 일에 모든 시간과 생각을 쏟아부으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난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나? 회사일은 점점 마음 밖으로 멀어졌고 사랑하는 사람은 계속 떠나갔으며 나이 듦은 반기지도 않는데 매일 찾아왔다. 난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았다. 삶이 나아지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햇살처럼 아스라이 사라지고 싶었을 뿐.


종이를 구겨서 음식박스와 같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밝은 햇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연락 없는 동료, 갈 길 잃은 발걸음. 그때의 난 너무도 무력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다. 고통이 심해지고 마음이 아파 올수록 난 내가 잃은 것들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고통은 사람을 일깨우고 앞으로 나가게 한다. 무력감에서 빠져나와 고통의 시대에 있는 지금에서야 삶이 추구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깨닫고 있다. 고통으로 점철된 널뛰기 하는 삶이지만 시간과 생각을 쏟을 무언가가 있다. 점점 상황은 안 좋아지고 있지만 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파괴되고 부서지면서 가라앉지만 때때로 떠오른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삶이 앞으로 나가고 있음을 안다. 그곳이 더 나쁘던 좋든 간에 가라앉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무력감보다는 고통이 훨씬 나았다. 무력한 날에는 자기 파괴라도 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시간과 생각을 집중한다. 포춘쿠키는 이제야 내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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