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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Feb 18. 2024

행복의 피자 한판

100개의 마음, 100가지 요리. 쉰아홉 번쨰

무엇을 나눈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한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나누지 않고 살 방법은 없다. 내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모든 것을 나눈 것이며 인생의 선택은 계속 삶을 조각조각 나눠서 수없이 많은 가지로 만들어 버린다.


처방을 받고 약을 받을 때 증상이 좋아지면 혹은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으면 복용량을 줄이세요라며 알약을 줄 때가 있다. 지금 5mm 도 안 돼 보이는 이 알약들을 어떻게 나눠서 먹으라는 것일까. 녹여서 먹다가 반쯤 남으면 뱉어 버리면 될까?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는 알약은 곱게 빻아서 종이에 담아주곤 했다. 그래서 반쯤 먹고 싶으면 정말 반만 먹을 수가 있었다. 왜 요즘은 모두 이렇게 완제품을 봉투에 담아주는 걸까? 아니 왜 그 옛날에는 모든 약을 빻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종이에 접어서 준 걸까.


무언가를 나눈다는 일은 쉽지가 않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나누어야 할 때는 더 그렇다. 여러 사람에게 사랑과 마음을 나누어 준다던가 하는 것들은 무엇이 나누어지는 것일까. 내 마음은 항상 100개 200개로 나우어져 있는데 그런 것들 중 하나를 보내는 되는 것일까.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은 모두 합치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


피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점심에 피자를 시킨다고 해서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 있었다. 꽤 들어본 듯한 피자집의 피자 다섯판이 도착했다. 사람들이 대회의실 테이블의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젊은 직원들이 받은 피자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피자 다섯판과 콜라 몇 병.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먹던 커피를 가지고 왔다. 얇고 널찍한 사각형의 박스를 열자 지름이 30cm는 되어 보이는 피자가 엄청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거의 완벽한 원형이 정확하게 8등분으로 잘라서 박스에 놓여 있었다. 피자상자를 열었을 때 깨끗하게 8조각(혹은 6조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한 개씩 집을 때마다 피자조각들은 끝이 뭉개지고 휘어지면서 제모습을 잃어 간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한 조각을 들어 내 접시에 올려놓는다. 나는 손에 묻히는 게 싫어서 접시에 올려놓고 끝부분부터 조금씩 먹는다. 어떤 사람은 손으로 들고 끝에서부터 잘라서 치즈를 길게 뽑아 가며 먹고 어떤 사람은 피자를 반으로 접어서 먹고 있다. 어떤 사람은 어디서 났는지 칼과 포크로 잘라서 먹고 있다.


어렸을 때 뉴스를 본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뉴스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피자, 햄버거만 찾고 김치를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아마 앞으로도 100년은 그 얘기를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은 김치만 먹고 있었는데 피자나 햄버거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었다. 그래도 주변에 아무도 그걸 먹어본 아이가 없었기에 궁금함은 금방 잊혀갔다.


무작정 상경해서 노숙자가 되어 떠돌던 20대 때 아르바이트 하던 곳의 동료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간 곳중 하나가 피자헛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피자가게였다. 다른 것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정말 큰 나무판에 꽉 찬 원형의 피자를 잘생긴 종업원이 들고 테이블로 가져다주었다. 그러더니 이상한 동그란 칼로 피자를 정확하게 8등 해주었다.  그 향기와 뜨거운 피자의 열기, 동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피자를 행복한 요리로 기억되게 해 주었다.


이후로도 피자를 먹을 때면 항상 그때가 떠올랐다. 웃음소리, 그 향기,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주 피자를 먹으러 갔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놓이는 원형의 피자와 그 조각의 완전함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너도 먹어봐 하면서 활짝 핀 웃음을 지을 때면 내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회사 사람들의 테이블을 정리하는 소리가 날 현재로 다시 끌고 들어왔다. 내 접시 위에 피자는 아직 한입정도만 베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몫을 다 먹고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에게 천천히 드시라고, 정리는 자기들이 하겠다고 말하는 어떤 다정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조각조각 내버렸다. 난 내 접시를 가지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일회용 접시는 어느 틈엔가 잔뜩 기름을 먹어 흐물거리며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있지만 그들 세계에서 항상 밖에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피자를 받아서 상자를 열어보니 너무 흔들려서 한 조각이 빠져나와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그 완전한 아름다움이 깨져버렸다. 나는 조각난 피자를 마저 다 먹고 접시를 버리러 탕비실에 갔다. 피자의 빈 박스에서 나오는 냄새가 회사 탕비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난 잠시 그 향기를 맡고 서있다가 접시를 버리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모두 다 제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마 나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렇게 조각난 마음을 달래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피자로는 더 이상 행복해지지 않는다. 기대로 부풀었던 마음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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