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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Feb 14. 2024

젊은이의 양배추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쉰여덟 번째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먹지 않았을 음식들이 꽤 있다. 처음 보는 요리, 취향이 아닌 요리, 여럿이서 먹어야 하는 요리, 코스요리 등등 많지만 그중 최고는 비싼 요리가 아닐까 싶다.


저가격에 저걸 먹는다고 싶은 음식들이 있다. 고작 1인분에 몇 만 원 하는 삼겹살이라던가 당일 현지에서만 오는 것만 먹을 수 있는 꽃새우라던지 일상에서 내 돈 내고 먹을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은 비싼 음식들이 정말 많다. 누가 생새우 한 마리에 만원을 주고 먹을 생각을 할까?


10여 년 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소고기 차돌박이를 먹기 위해 용산 근처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거래처 사람과 저녁을 먹는데 내가 꼭 같이 가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상사의 거절할 수 없는 요청으로 ‘그래 가서 병풍이 되자’하고 결심한 후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역 뒤의 허름한 가게였다. 정말 오래된 가게로 보였지만 가게 밖에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예약을 했던 건지 팀장은 날 데리고 안쪽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종업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 거래처 사람들이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거래처 사람들이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좌식테이블 앉기에 불편한 옷을 입고 와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다시 앉기가 너무 힘들었다.


 팀장은 가끔 내 동의를 구하기는 했지만 딱히 내 의견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난 가끔 소리 내어 동의를 하고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차돌박이 130g에 이만 원 가까이 되었다. 너무 비싸다. 그냥 구운 차돌박이일뿐인데 얼마나 다를까.


곧이어 숯불과 반찬들이 내어져 왔다. 신기하게 생양배추와 초고추장이 반찬으로 나왔다. 팀장은 술을 시키고 웬일인지 고맙게도 나에게는 탄산음료를 시켜주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사한 내가 한심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생양배추를 뜯어 고추장에 찍어 먹어 보았다. 놀랍게도 정말 달았다. 설탕물에 담갔다 나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양배추를 삶아 먹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생양배추로 먹어도 되는지 전혀 몰랐다. 이후로도 난 열심히 고기를 굽고 몰래몰래 양배추를 먹었다. 고기를 굽느라 팔이 빠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웃는 얼굴에 경련이 일었지만, 양배추의 달콤함이 나를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느끼게 해 주었다. 대답하는 병풍의 세계에 들어오는 달콤한 바람. 기분 나쁜 접대의 세계에 세워진 얼굴병풍이지만 그날만큼은 끝까지 서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난 자주 양배추를 사다가 집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밥을 먹기 싫을 때 입맛이 없을 때 난 양배추를 꺼내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었다.


그 사람은 날 보며 맛있냐고 웃으면서 자기도 양배추를 한 움큼 집어 초고추장을 찍어서 먹었다.


“그냥 초고추장 맛이네”


하며 신나게 웃어댔다. 그 사람은 고기를 좋아한다. 육지에서 나는 모든 고기와 바다에서 나는 모든 해산물도 좋아한다. 그리고 야채 따위는 구색 맞추기에 불가했다. 오늘도 내가 만든 불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양배추를 왜 먹어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양배추를 더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양배추가 메인인 세상에 그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의 세상의 사이드에 항상 내가 있다. 나는 조금씩 그 세상에서 사이드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은 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윤기 있는 검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탄력 있는 피부와 검고 생기로운 눈동자, 가지런한 치아. 가지고 싶은 것은 그 사람의 젊음일까 사랑일까. 먹다 보니 양배추의 시들시들한 겉 부분만 남았다. 이건 이제 버려야겠다. 잘게 잘라서 눈에 띄지 않게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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